어느 노래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건 그 사람만이 아니다. 애주가가 아니더라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어느 작은 골목가에 자리한 대폿집에서 두툼한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피맛골의 고갈비집에서 고등어와 동동주 한잔은 퇴근 길 직장인들의 피곤함을 달래주는 안식처였다.
정부부처의 한 고위관료와 저녁을 하는 자리였다. 집주인이 직접 만들어 내놓은 막걸리를 마시던 그는 "이런 좋은 술을 밀주라고 하니 답답하다. 술도 산업인데 주세법에 묶여 국세청에서 관할을 하니 발전이 되겠냐"고 말했다. 막걸리 애찬론자이기도 한 그는 막걸리가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자고 하자, 이 술이 자칫 일본에서 먼저 세계화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정부가 막걸리를 세계화하겠다고 한다. 제조시설 기준을 완화해 영세업체의 참여를 늘리는 등 규제완화를 통해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찬성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신규사업자가 우후죽순 진출해 품질이 낮아지고 시장질서가 흐려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주류공업협회는 공업이라는 단어를 빼고 포괄적 의미인 산업을 넣어 주류산업협회로 바꾸었다. 김치 세계화를 내건 세계김치협회도 출범하고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도 구체화되고 있다. 한 유명 산업디자이너는 막걸리와 소주, 사이다를 6대 3대 1로 섞은 혼돈주를 상표등록해 세계에 알리겠다고 한다.
막걸리가 세계화되려면 우선 세계인들이 발음하기 쉬워야 한다. 당장 시작부터 힘들어 보인다. 막걸리는 위키디피아에 Makgeolli 혹은 Takju로 나오고 Korean rice wine이 부제로 소개된다. 본명인 막걸리(Makgeolli)를 발음하고 이것을 한국 전통술로 인식할 세계인이 얼마나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둘째는 막걸리의 정체성이다. 표준화라는 얘기다. 어느 지역의 쌀을 어떤 물로 어떻게 찌고 어떤 찌게미를 갖고 얼마나 발효해서 어떤 도수와 탁도와 맛이 나는 것을 막걸리라고 부르는 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이 필요하다. 그래야 짝퉁 막걸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셋째는 판로확보다.시작은 막걸리를 전혀 모르는 나라, 국민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교포들과 교포가 운영하는 음식점, 주점 등을 상대로 확대하는 게 좋다. 그래야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되고 현지인에 소개되는 발판이 된다.
넷째는 막걸리를 어떤 문화, 콘텐츠, 스토리를 결합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버드와이즈가 미국 노동자들의 맥주였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맥주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 서민, 농민의 술이었어도 바다를 건너면 웰빙 발효주로 소개될 수 있다.
등산후 막걸리 한사발의 쾌감처럼 요가나 운동 후에 막걸리 한잔을 연상시킥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막걸리에는 식이음료의 1000배 이상의 식이섬유가 들어있고 이는 대장운동을 활발하게해 변비를 예방하고 심혈관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 특유의 포만감과 풍부한 영양소는 다이어트에도 좋다.
우리가 세계화한다고 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일본의 탁월한 창조적 모방과 중국의 무시무시한 생산능력이다. 우리가 김치자랑만 늘어놓는 사이 일본은 기무치를 통해 세계인을 공략했다. 국산 김치 수출이 이제야 흑자로 돌아섰으나 중국산 김치는 이미 우리 식탁과 음식점을 점령했다. 막걸리가 일본의 맛코리(マッコリ)로 둔갑되고 국산 막걸리가 중국산 쌀에 의존하면 막걸리 세계화는 속빈강정에 불과하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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