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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대통령의 말 한마디

시계아이콘02분 24초 소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남긴 증언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단호한 지도자 기질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나옵니다. 그중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할 때 일입니다. 청와대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는데···


야당이 농성을 해서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법을 통과시키기 어렵다며 다음 회기에 통과시키도록 하겠다는 당시 김종필 당의장의 보고를 듣자마자 “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이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데, 야당이 반대한다고 국회에서 통과를 못 시켜?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 자리에서 워낙 박 대통령의 분노가 커지자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호통이 이어졌고 “내가 나라 살리겠다고 산업도로 만들려고 하는데, 야당이 반대한다고 여당이 그걸 하나 통과 못 시켜? 여당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모두 고개를 숙이고 숨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로 침묵이 계속되며 박 대통령은 분노로 손까지 떨면서 연거푸 담배연기를 뿜어냅니다. 이윽고 당 지도부가 잘 하겠다는 말에 “알아서 하라!”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혼이 나서 청와대를 빠져나와 바로 국회에 들어가서 단상을 점거하고 법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불과 30분도 안 걸렸다고 했습니다. 회기종료 40분을 남기고 감행한 소위 날치기통과였습니다.

물론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미리 야당 의원들은 단상을 점령하고 격돌에 대비하기 시작했지요. 단상에서 의장 전용출입문을 막고 의장석에 마련된 의사봉과 마이크를 숨기는 것까지 오늘날 본회의장 행태의 복사판이자 원조였습니다. 의사봉 대신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회의 속개를 선언하고 법안을 일괄 상정한다고 소리치자 야당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결국 야당이 점차 힘으로 밀려나고 법안은 통과됩니다.


고속도로 건설은 아무리 야당이라 해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는데 야당이 왜 그토록 반대에 집착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1968년 1월, 무장공비가 청와대로 침투하다 실패하여 수도권 전역에 대대적으로 군경의 소탕작전이 전개될 때도 박 대통령은 “공비는 공비고 건설은 중단할 수 없다”며 집무실에서 경부고속도로 설계도를 펴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속도로는 2차 5개년계획 연도에 반드시 완성해야만 3차 5개년 계획 때 그 도로를 이용한 경제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서로 맞물려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원하는 기간에 무조건 건설해야 하는 민족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특히 토목공사는 해빙기인 2월부터 5월까지가 최적기라 결코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야당의 반대를 몸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월 1일 서울~수원간 기공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아무리 우리 국민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통일을 전쟁수단에 호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은인자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엄숙히, 그리고 분명히 북괴에 경고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연설에서 처음으로 ‘싸우면서 건설하자’라는 구호가 사용됩니다.


경제위기라 하면서도 요즘 한나라당이 하는 행태를 그때 공화당과 비교해 보면 덩치는 더 크면서도 소신은 없고 참으로 느긋하기만 합니다. 무슨 법안이나 추경예산 하나 통과할 때마다 야당의 눈치부터 먼저 보는 건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많기 때문입니다. 민생을 위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이나 스스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없는 직장인 정도로 보입니다. 대통령을 정치인이 아닌 최고경영자(CEO)라고 생각해서일까요.


장소를 불문하고, 대통령이 하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력을 갖는지를 말하기 위해서 무려 40년 전의 과감한 날치기 실례와 증언을 들어보았습니다. 대통령은 무릇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각오로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현재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 리더십의 출발이 대통령의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상해임시정부가 한국정부의 적통임을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요? 굳이 대통령의 입으로 틈틈이 그걸 언급해야만 정통성이 생기는 건 아니죠. 고리사채에 시달리다 유흥업소를 출입하고 죽음에 이른 한 여대생의 비극적인 사례를 그 엄중하고 할 일이 많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이 거론해야만 비상이 걸릴 정도에 이르다니요.


외환위기 이후부터 10여년 넘게 고리사채업자들이 그토록 오만하게 발호 할 수 있었던 것은 온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 사회문제입니다. 그 뿌리가 조직폭력배들까지도 연결되어 있고 마침내 가정파괴로 연결되는데도, 만연한 불법천지를 오직 사정당국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대응해 온 게 사실입니다.


단지 철새들이 날다가 전선에 부딪쳐서 다리가 부러진다는 이유로 전봇대를 뽑아내기로 한 전남 순천시의 결단을 보십시오. 작은 지방정부가 우리나라 국적도 아닌 다국적 철새들의 다리도 그처럼 연민으로 생각해 주는데 말입니다.

“100만달러를 전부 100달러짜리로 바꿔 주면 좋겠다는 말을 대통령이 현직에서 했던 말이라고 과연 믿어도 될까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100만달러가 든 돈 가방 무게보다 더한 천금 같은 무게를 가지려면, 정말 대통령이 도덕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주변권력이 엮인 대형비리를 통해 얻고 있는 중입니다.


남북문제는 점차 더 꼬여 가고 “언제 어디서든지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던 대통령의 대북메시지도 무게를 잃는 날입니다.






시사 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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