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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골편지]감옥에서 징역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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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서도 가족간의 거리가 수천 km보다 더 멀 수가 있다.


나는 13평 창고에 산다. 새로운 감옥이다. 그렇지 않는가 ? 수천만원 대출을 일으켜 집을 샀더니 집값이 내리고, 금리가 치솟으면 집을 장만한게 아니라 빚을 장만한 것이란 것을. 매달 돌아오는 원금과 이자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집'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보면 '빚'을 뒤집어 놓은 꼴이다. 집을 마련하는 순간 미래가 저당 잡히고 만다. 그 때부터 집은 창살없는 감옥이라는 생각, 절로 들 것이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나의 13평도 감옥이며 격리, 소외의 한 형태다.

안방에서 창고로 독립한게 몇개월전이다. 정말 '독립 만세'였다. 나는 아무런 제약 없이 담배도 피우고, 간단한 운동도 하고 책도 읽는다. 금강이가 종종 오색 헝겊으로 만들어진 공을 차러 들어와 방해하는 것 빼고는 여유로왔다. 공속에는 방울이 들어 있어 발길질할 때마다 심란해진다.
"딸랑, 딸랑...." 
사실 그건 놀아달라는 시위다. 한동안 모르는체 하자 시위는 더 거세진다.
다들 알겠지만 혼자 지내는 거 습관 들면 중독이다.
방울소리는 "아직은 아니야...독립 ! 꿈도 꾸지마라"고 한다.
나는 아들을 제지한다. "내일 놀자..잉 ? 아니면 용돈 줄까 ? 숙제 다 했니? 엄마는 뭐해 ?"
그러나 아들의 사소한 시비는 아마도 계속될 듯하다.


나의 독립도 은근한 투쟁속에서 이뤄졌다.
그것은 이미 몇해전부터 차근히 진행돼 왔다. 한밤중에 몰래 창고에 들어와 널부러졌다가 안방을 끌려가기를 반복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에도 어김없이 옷도 안 벗은채 창고로 직행하고는 했다. 이미 계산된 작전이다.


아내의 신조는 "부부가 떨어지는 순간 남과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가끔씩 허락을 받고 창고에 머물기도 했다. 나의 이중생활, 부조화스러운 동거, 예속의 시간이 이어졌다.


지리한 설득과 협상이 있었던 지난 가을 어느날 아내는 홀로 침대를 창고로 옮겼다. 이번 겨울을 나야 독립할 거라고 여겼는데, 의표를 찌른 것이다.


잡다한 물건들도 치워졌다. 안방에서 아내와 동거할 때도 나는 침대, 아내는 온돌에서 살았다. 우리의 이별은 침대의 위치를 안방에서 창고로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어차피 침대는 아내에게 쓸모없는 물건이니 남편과 함께 치워진 것과 다르지 않다.


퇴근 후 독립 허용이라는 '최고의 이벤트'(?)를 노렸던 아내의 속셈을 눈치챈 나는 그날 안방에서 잤다.


잠들기전 아내는 "왜 맘에 안 들어 ? 이거 감동 먹어야되는거 아냐."하며 실망한 눈길을 보냈다. 막상 생색도 낼 수 없는 분위기에 약간은 당혹한 눈초리다. 실은 '얼씨구나'하고 달겨드는게 체면 구기는 것처럼 생각돼 표정 관리중이었다. 게다가 너무 좋아할 경우 아내가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 김을 빼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동안에도 잘 참았는데, 하루쯤이야..."
나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 내일부터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숨기면서. 아내한테는 "그냥 해본 말인데"하는 표정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창고는 내 세계다. 예전에 창고는 텅빈 곳이었다. 책들만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창고는 건폐율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지은 공간이다.


사실 네식구가 사는데 필요한 공간은 스무평을 넘지 않는다. 거실 일부와 주방, 안방과 각 침실을 다 사용한다해도 그 정도다. 나머지는 불필요하게 가진 공간이다.


어쨌든 텅빈 공간에 침대가 들어가고 나자 서서히 살림이 늘어났다.
얼마전 나는 아내에게 앉은뱅이 책상 하나를 요구했다. 고졸스러워 차 마시고 싶은 분위기가 나는 걸로 사달라고. 그런 아내는 실망스럽게도 약간 넓직한 소반을 마련해줬다.


"안목이 없기는..."
게다가 바닥에는 러그랄 수도, 천이랄 수도 없는 격자무늬 헝겊을 깔아줬다. 참 촌스러웠다. 그래도 소반 하나 놓여지자 공간이 좀 아늑해 보인다.


방으로치면 윗목에 해당하는 구석 한편에 골프 연습할 곳도 마련했다. 골프연습 ?. 벽에 메트리스를 대고 바닥에는 카페트과 여름 담요를 겹쳐놓은 다음 배드민턴 공을 치는 거다. 스윙연습 정도지만 괜찮다. 그리고 그 옆에 퍼팅을 할 라이도 만들었다.


이 정도에 이르자 공간은 더욱 정체성을 갖는다. 완연히 내 분위기가 배어들었다. 나만의 공간에 나만의 욕심들이 서서히 채워져 갔다. 아마도 욕망은 그럴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할 때 소리없이 침범해간다.


가족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아들의 시위가 잦아진 것은 그때부터다.
아빠를 찾을 나이가 지난 평강이(딸, 중3)도 "변했어"하는 정도로 투덜거렸지만 이미 멀어졌다는 것을 느낀 듯하다.


맨 처음 집을 지을 때 집 내벽에는 단열재를 넣지 않았다. 대신 외벽은 2X6로 설치, 일반적인 목조주택의 외벽보다 1.5배가량 두껍게 했다. 단열만 신경쓰고 내부의 방음을 고려치 말자는 것이었다. 안방에서는 자다가도 건넌방 아이들의 상태를 모두 느껴야한다는 생각에서였다.그래서 아이들이 나쁜 꿈을 꾸는지,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는지 알아야된다는...


그처럼 나의 초심은 속깊은 아버지(?)였다. 이제 나는 공간을 얻은 대신 기족들을 잃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른 다음 무엇을 더 잃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공간이 궁금하다.



나는 스스로 유폐인지도 모를 독립을 통해 끝내 감옥을 짓고 있었던 셈이다. 잠시 누린 징역의 즐거움(?)은 단절의 또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도 나는 창고를 나가지 못한다.  


"늦기전에 돌아갈 수 있어야할 텐데."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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