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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골편지]나의 대책없는 전원지교

금요일 비가 내렸다.


나는 아침 일찍 안거리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 금강이(작은 애) 졸업식이 있어서다.아들 녀석은 전날 밤 아빠의 머리가 꺼벙하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졸업식 전까지 머리를 깎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안거리가 술렁거렸다.


졸업식이 열리기 전인데도 꽃다발을 들고 바빠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우리 부부는 꽃다발이나 졸업 선물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 녀석이 그 대신 용돈을 주라고해서다. 무엇에 쓸라나 ? 내가 2만원, 아내가 1만원. 총 3만원을 줬다. 참 싸게 먹혔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고 폴짝거리는 녀석을 보노라니 '참 순진하기는...'하는 생각이 든다. 불황이라 애들도 현금을 중시하는 모양이다.


시골 학교의 졸업식은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졸업식장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농협조합장, 안거리 의용소방대장,마을 유지들. 교장 선생의 하품 나는 훈시, 아이들 졸업식노래, 교가 제창 등 여러 모습이 큰 감흥 없다.


"웬일이니. 여자애들 하나 눈물 흘리는 놈들이 없네"


아들녀석이 한 과정을 마쳤다는 것이 감흥이라면 감흥일까. 나는 그저 그런 아들의 졸업식을 마칠 뻔 했다.


그런데 졸업식이 끝나고 마지막 졸업장을 나눠주는 교실에서의 경험은 색다르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느라 어수선한 사이 선생님은 졸업장을 나눠줬다.


선생님도 집중 시킬 생각이 없다는 듯 그저 아이들을 불러 졸업장을 줬다. 그러던 중간에 선생님이 굵은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한번 흐른 눈물은 수도꼭지같다. 끝없이 줄줄 새는 눈물은 일찌기 본 적이 없다.


그순간 재잘거리느라 어수선하던 교실에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온다.


"핸규 !!..울보..울보.."


어찌 그리 동시에 합창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계속해서 합창을 하고 선생님은 이름도 부르지 않은 채 누군가 눈이 마주치면 손짓으로 불러 졸업장을 나눠줬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가 지나고 잠시 창가에 가서 숨을 돌린 선생님은 교탁앞에 고즈넉히 섰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도 시선을 모았다.


또 다시 눈물이 흐르고 선생님의 입술이 씰룩이는 듯이 작게 열렸다 닫혔다.


"애들아 !!자장면 먹고 싶으면 전화해..안녕..잘가!!"


그것으로 끝인가. 할 말이 있을 듯한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한다.


선생님이 칠판쪽으로 막 몸을 돌리는 찰나 아이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엉켜붙었다. 거대한 포옹의 덩어리다. 기어이 여자애들이 훌쩍인다. 그리고 포옹의 덩어리는 교실 밖으로 아주 조금씩 움직여 나갔다.


나는 눈물 바다를 이루던 옛날의 졸업식을 기억한다. 눈물을 터뜨리는 타이밍은 졸업식 노래가 울려퍼지는 순간이다.


"요즘 애들은 눈물도 없네. 많이 달려졌구나"하던 내 생각을 선생님은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아이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을 가르치고 가는 그 모습이라니.


선생님은 '핸규'가 아니라 현규다. 아이들은 항상 핸규로 부른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다. 그는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대학로에 와서 연극도 보고, 남한산성축제에도 가고, 등산도 다녔다.


그 때마다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사줬다. 아이를 통해서 들은 얘기로는 월급의 절반은 아이들에게 쓰는 것 같다. 아직은 총각이라서인가.


그런 선생님은 평소 어느 순간에도 운 적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올보'라고 하는 걸로 봐서 말이다.


"아이들이 평생 잊지 못하겠네." 그의 눈물이 자꾸 내게 감염되려고 했다.


요즘 학부모들 중에는 자녀를 용산 미군부대 내 외국인 학교에 보내기 위해 거짓 입양시키는 사례가 있다.


어느 신문은 이를 '맹모도 기막힌 입양지교'라고 표현했다. 내게는 이런 것들이 기막히다기보다는 두려움이다. 나는 아이들 교육이라는 거, 그냥 내버려두는게 최고라고 여겼다. 이런 소식 접하면 제일 먼저 아이를 너무 방치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나는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에 찾아가본 적이 없다. 아이가 운동회나 소풍, 혹은 학교 행사에 나와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끝내 외면해왔다. 담임선생으로부터 몇차례 전화를 받았는데도 그랬다.


4학년 때 일이다. 금강은 학기초가 시작되기 전부터 반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별렀다. 전화도 하고, 편지도 보내고 몇몇은 만나서 오락실도 다니는 등 친구들 포섭에 방학의 절반을 보냈다. 이곳 초등학교는 반이 하나다. 아이들도 30명 정도다.


병설 유치원 때부터 함께 지내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아이들의 반장선거는 어른들 뺨친다. 누가 출마할 건지 경쟁 관계를 파악하고, 미리 표 계산도 한다.


"아빠, 민성이도 나온다는데...그 애가 나오면 우리 반은 망해."
"왜 ? 너랑 제일 친하면서 그런 말을 다 하냐 ?"


"몰라. 우리 반 애들이 다 그래."


나는 그런 모습이 크게 달갑지 않았지만 의욕을 꺾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걱정을 늘어놓았다. 반장보다 반장 엄마가 더 바쁘다고. 챙길게 어디 한두가지며 허구헌날 학교에 나다닐 일도 많다는 것이다. 나도 은근히 걱정됐다.


곧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니 반장 되면 할 일도 많고 공부도 잘 해야돼. 그러면 놀지도 못 한다."


"자장면 사 줄게 반장 나가지 마라" 등등


농담 반 장난 반 며칠째 아이를 꼬시느라 진땀을 흘렸다. 금강은 포기할 기색이 아니더니 막상 선거가 있던 날 친구를 밀어주고 사퇴했다. 아이한테 괜히 미안해졌다.


" 왜 그랬니 ? 꼭 반장할거라고 벼르더니..."


짐짓 뭉쳤다. 


"아빠 학교에 올 시간도 없고 바쁘다면서."


반장 건은 아이가 뾰로퉁하게 응수한 것으로 사태가 일닥락됐다.


그렇게 나는 학교와 아이를 외면했다.


금강은 생후 5개월째부터 전원에서 살았다. 다른 세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 그동안 학원이라는데도 가본 적이 없다. 있기는 하다. 유치원 때 태권도 교습 두달이 전부다.


최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곤지암의 영어학원에 다닌다. 그리고 영어학원 끝나고 일주일에 네시간 기타 교습을 받고 있다. 순전히 금강이 원해서다.
 
금강은 초등학교 내내 친구들 엄마한테 기피 인물 1호로 지냈다. 이곳 아이들도 방과 후 학원에 다닌다. 금강은 학교 끝나고 놀 친구가 없다. 그래서 학원 가는 친구들을 붙잡아 산으로 들로, 계곡으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학부형들에게는 아이들 공부 안 하는게 다 금강이 탓이다.


간혹 아내는 다른 학부형들로부터 "제발 학원 가는 애 붙잡지 못하게 해달라"는 주문을 듣곤 했다. 그래서 아내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려고 시도했으나 그 때마다 내가 말렸다. 금강이도 학원 가길 질색하니 내가 편든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조장했을거다. 금강의 꿈은 잣나무골을 벗어나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


언젠가 금강은 이런 편지를 내게 쓴 적 있다. 


"아빠 힘드시죠. 사장님이 일을 많이 시키나요 ? 엄마가 나한테도 자꾸 공부시켜서 아는데, 그냥 참는게 나아요. 그 대신 방학이 되면 나랑 아프리카 초원에 가요..."


그래. 꼭 가보자. 그건 내게도 꿈이 됐다. 언제 가보나 ?...세랑게티며 만델라의 고향이며...


내게 꿈을 줬던 그 편지는 한동안 지갑속에 들어 있었다. 그런 아들이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렇게 나의 전원지교는 순전히 엉망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대치동을 기웃거려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잣나무숲 언저리에 버티고 앉아있을 뿐이다. 나는 맹모삼천지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는다. 맹모가 장의사촌에서 시장으로, 서당 근처로 이사한 것은 인생과 경제, 학문을 고루 가르치기 위해서였을 거라거.


인간이 죽고 사는 문제는 곧 철학이다. 또한 물물교환이 이뤄지는 시장판은 경제가 집중되는 곳이다.


만약에 맹모가 처음부터 서당 근처에 살았고 맹자는 책만 끼고 살았다면 고시를 패스해서 성공적인 관료로서의 삶을 누렸을지는 모른다. 그가 위대한 사상가로 전국시대를 누비며 많은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었던데는 삶과 죽음, 생존을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강남이 집값이 비싼데는 8학군이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밀집한 학원촌은 수많은 엄마들을 맹모로 만든다. 우리 부부는 맹모들이 득실대는 현실에 비춰볼 때 자녀 교육을 포기한 학부모와 다름없다. 더우기 외국인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을 거짓 입양도 서슴치 않는 부모들 앞에서 내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멀쩡하게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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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아이들에게 잘못 한 것만 같다.


이규성 부동산부장 peac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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