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한 때 우리나라에 '패스트 패스' 도입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테마파크 등에서 패스를 구매하면 줄 서지 않고 우선 탑승할 수 있는 건데요. 웃돈을 주고 시간을 사는 것이죠. 이 때문에 도입 초반에는 논란이 좀 됐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래도 워터파크나 테마파크에서는 어느 정도 정착된 모습입니다.
일본도 '디즈니랜드'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 등 테마파크에서 패스트 패스 판매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제도가 음식점이나 카페로도 퍼지고 있다고 해요. 심지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꼭 가는 라멘 프랜차이즈 '이치란'도 패스트 패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는데요.
이는 일본에서 '타이파(タイパ)'라고 부르는 '시간 대비 효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가 있다면, 일본은 '시간 대비 성능'을 따지는 '시성비'가 대세거든요. 오늘은 일본에 퍼진 패스트 패스, 그리고 효율을 따지는 타이파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패스트 패스 플랫폼 '테이블 체크'의 홈페이지. 가맹점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테이블 체크.
일본에서는 최근 패스트 패스 플랫폼 '테이블 체크'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제휴 업체들은 패스트 패스를 구입해 웨이팅 없이 들어갈 수 있는데요. 가게마다 패스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가령 자리가 6개 밖에 없는 조그마한 라멘집 '긴자 야고'는 사람 많은 날은 6시간씩 웨이팅을 하는데요.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500엔(4670원)을 더 내면 바로 입장 가능한 패스트 패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도 문전성시라고 해요.
카페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요. 도쿄 시부야구에 위치한 유명 팬케이크 전문점 '프리퍼스'도 같은 가격에 패스트 패스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유명 라멘 체인점 이치란도 '패스트 엔트리'라는 이름으로 패스트 패스를 판매하고 있어요. 이치란은 아예 공식 홈페이지에서 "상품(패스트 패스)을 구입하신 고객님에게 드리는 특권으로, 시간이 없으신 분들께 굉장히 호평을 받는 서비스"라고 ?설명하고 있죠. 자체 패스인 패스트 엔트리는 대만 타이베이 점포에서만 판매합니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신주쿠 가부키쵸 매장 등 일본 매장들도 테이블 체크에 가맹점으로 등록해 패스트 패스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요. 해당 매장에서는 "줄이 있어도 패스트 패스 전용 레인을 통해 신속하게 매장으로 안내해드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라멘 체인 '이치란'의 패스트 엔트리 서비스. 이치란.
테이블 체크는 2024년 2월 9일 패스트 패스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현재 누적 이용자 수만 2만60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해요. 특히 웨이팅하는 시간을 아껴 다른 관광지를 다녀야 하는 방일 관광객들에게 호평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용자 중 20%가 관광객이라고 해요.
한국에 '빨리빨리'가 있다면, 일본은 '○○대비 효율'을 따지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우리나라의 '가성비'에 해당하는 '코스파(コスパ)'입니다. '코스트(cost)'와 '퍼포먼스(performance)'를 합친 말로,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데요. 이 표현은 1970년대 자동차 업계에서 쓰이던 '가격 성능비'라는 개념이 잡지를 통해 퍼지며 대중화됐다는 설이 있어요. 이후 일본이 장기 불황에 들어가면서 이 코스파라는 개념이 널리 쓰이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효율에 대한 단어가 생겨났는데요, 코스파 다음으로 생긴 단어가 시간 대비 효율을 뜻하는 '타이파'입니다. 타임(time)과 퍼포먼스를 합친 말이죠. 이 밖에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본인이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스페이스(space) 대비 효과'를 뜻하는 '스페파'라는 단어가 생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계정은 많을수록 효용이 좋다며 어카운트(account)와 퍼포먼스를 합친 '아카파' 등 다양한 효율에 대한 단어가 생겼습니다.
식당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 테이블 체크.
특히 타이파를 중시하는 것이 일본의 Z세대라고 해요. 닛케이비즈니스는 "Z세대는 코스파보다 타이파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어차피 할 일이라면 시간이 덜 걸리는 길을 선택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는데요. 소비뿐만 아니라 정보 습득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서, 긴 기사나 영상보다는 숏폼같이 짧고 요약된 콘텐츠를 선호한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돈으로 시간을 차라리 사고 싶다'라는 생각이 Z세대를 넘어 어느새 서비스 설계에 새로운 기준이 된 것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지루하지만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아니면 빨리 먹고 더 많은 곳을 함께 둘러보는 경험. 사회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점점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