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정기자
박유진기자
"독자성을 최우선으로 하면 성능 이슈가 불거질 수 있고, 성능을 따지면 독자성 기준을 충족 못하는 딜레마를 떠안게 됩니다."(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참가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말 '독파모' 프로젝트에서 최종적으로 두 곳의 컨소시엄을 선정키로 예고한 가운데 독자성 기준을 두고 AI 업계의 고민이 깊다.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정부의 대대적인 자원이 투입되는 만큼 우리만의 고유한 아키텍처(설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과 "독자적인 아키텍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성 기준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것은 급변하는 거대언어모델(LLM) 개발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는 앞서 5개 정예팀을 대상으로 한 '독파모' 프로젝트 1차 선정과정에서 독자성 논란이 불거지자 당초 1곳을 탈락시키려던 계획을 변경해 2곳을 미선정했다. 뒤늦게 "1차 평가 시 오픈소스 활용은 되지만 자체 기술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마를 타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IT업계 LLM 개발자 사이에서는 여전히 찬반양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장 미국, 중국을 빠르게 추격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독자성과 성능을 모두 고려한 신중한 선택지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중앙대 위정현 가상융합대학장은 "글로벌 모델들도 필요하다면 오픈소스를 적극 활용하는 마당에 우리만 제로 베이스로 모델을 개발한다면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갑자기 바뀌는 평가기준이나 대회 룰에 대해서도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I업계 대표는 "앞으로는 업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갑자기 바뀌는 대회 룰과 기준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며 "국내 LLM 업계 전문가 상당수가 이미 독파모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 검증이 편향성 없게 객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력, 상징성, 산업 파급력 등 정부가 무엇이 우선인지 명확히 해서 독파모 프로젝트가 국내 AI 생태계 조성에 일조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독파모 프로젝트가 '서바이벌 방식'을 채택하면서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생존과 탈락 여부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글로벌 LLM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릴리온랩스 신재민 대표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자본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독자 설계도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개발 효율성을 높이고 있으며, 이런 도전이 결국 AI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2차 선정을 앞둔 정부 내부의 고민은 보다 복합적이다. 단기적인 성능 경쟁을 넘어, 이 과정에서 어떻게 국내 AI 생태계를 키우고 결과물을 활용하게 만들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경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정책실장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목적은 결과물 하나를 뽑는 데 있지 않다"며 "개발 과정에 다양한 기업과 연구진이 참여하고, 이후 실제 산업과 공공 영역에서 활용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 사업을 '단발성 서바이벌'로 끝내선 안 된다고 보는 이유다.
특히 평가 탈락 기업들을 둘러싼 후속 대응은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번 프로젝트가 국가대표 AI라는 상징성을 띠면서, 선정과 탈락이 곧바로 성공과 실패로 낙인찍히는 구조로 굳어질 경우 도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과기정통부 고위관계자는 "미선정 기업들도 기술력과 경험을 쌓은 만큼, 후속 연구와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정책적 출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내부에 있다"며 "일종의 '참가상격' 인센티브를 포함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센티브에는 GPU 활용 기회 제공, 후속 연구 과제 연계, 오픈소스 활용 지원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미지=제미나이 생성
독자성 기준을 둘러싼 혼선 역시 정부가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정부는 독자성의 의미를 단순한 '외산 배제'가 아니라 자주권과 통제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 AI가 범용 기술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국방, 보안 등의 영역에서 우리가 통제 가능한 모델이 필요하며,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어떻게 만들어졌고 관리되는지 우리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고위관계자는 "독자성은 처음부터 사업의 최소 요건이었지만, 업계 이해 수준이 제각각이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추가 정예팀 공고 과정에서 기술적·정책적·윤리적 측면에서 정부가 독자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업계와 공유한 뒤 의견을 들어보니 '이 정도면 충분히 명확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