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기자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덴마크 연기금이 미국 국채 보유분을 전량 처분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압박이 이번 매도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린란드 지배 목표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유럽 지도자들은 비판 수위를 높이며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올린 이미지.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덴마크 연금기금 아카데미펜션은 약 1억 달러(약 1480억원) 규모의 미국 국채 보유분을 이달 말까지 모두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카데미펜션은 이번 결정이 미국 정부 재정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이 연기금은 교사와 학자들의 노후 자금 등 약 250억 달러(약 37조원)를 운용하고 있다.
안데르스 셸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국가라고 보기 어렵고, 미국 정부의 재정 역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셸데 CIO는 이번 매각 결정이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압박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번 판단이 미국과 유럽 간 갈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최근의 지정학적 상황이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덧붙여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압박 역시 간접적인 고려 요소로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병합 의지가 꺾이지 않는 가운데, 그린란드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이날 수도 누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실제로 그린란드를 무력으로 병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닐센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하듯 군사력을 동원할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들의 일상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지역 당국 대표로 구성된 전담 대응팀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Make America Go Away(미국은 물러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모자.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각국 정상들의 반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그린란드로 표시된 지역 위에 대형 성조기를 들고 서 있는 가상의 이미지를 게시했다.
같은 날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그린란드 병합 필요성에 대해 "국가 안보뿐 아니라 세계 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린란드를 차지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만 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과의 긴장을 사사건건 고조시키고 있다"며 "외교적 제안에는 조롱에 가까운 온라인 게시물로 대응하고, 경제적 관세 부과와 영토 확장 위협을 병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각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행보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국제법이 무시되는 법치 없는 세계로 치닫고 있다"며 곳곳에서 다시 '제국주의적 야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용납할 수 없는 관세를 영토 주권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우리는 단순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절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며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평소 신중한 어법을 구사했던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역시 미국의 관세 부과는 "잘못된 조치"라고 일갈했다.
이는 프랑스를 포함한 8개 유럽 국가가 그린란드에 연대 차원의 병력을 파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국가에 대해 다음 달 1일부터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데 대한 반응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8개국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데 대해 "명백한 실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은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며 "유럽연합과 미국은 지난해 7월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에서든 비즈니스에서든 합의는 합의이며, 친구 사이에서 나누는 악수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일방적인 그린란드 병합 움직임이 결국 미국과 유럽의 전면적인 무역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신식민주의'를 규탄하고, 그린란드 지배 목표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유럽 대륙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