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기자
감사원이 국세청이 122조원인 누계체납액을 100조원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체납자의 '압류 해제' 시점 등을 전산에 소급 입력하는 방식으로 국세징수권 1조4268억원을 위법·부당하게 소멸 처리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고액·상습체납자에게는 출국금지 해제나 압류 해제 등 '혜택'을 주는 사례가 있는 반면 소액체납자 재산 압류는 공매 실익 판단 없이 장기간 방치되는 등 체납징수 관리 전반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12일 공개한 '국세 체납징수 관리실태' 감사결과에서 "고액체납자 등에게는 체납을 임의로 소멸시키거나 출국금지·압류 해제 등 혜택을 주면서 소액체납자의 압류는 장기간 방치하는 등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사는 2024년 5~7월 진행됐다. 국세청 체납액은 2020년 19조2000억원에서 2023년 24조3000억원으로 늘었고, 누계체납액도 100조원 수준으로 커지면서 징수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국세청이 임의로 누적 체납액 규모를 줄인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202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누계체납액 공개 요구가 나오자 2021년부터 '국세통계포털'에 공개하기로 했는데, 임시 집계한 누계체납액이 122조원으로 확인되자 100조원 미만으로 축소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후 국세청 본청은 지방청별로 20% 감축 목표를 일률 할당하고, 압류해제 점검명세를 12차례 내려보내며 소멸시효 기산점을 법령과 달리 '추심일'이나 '압류일' 등 과거 시점으로 소급하도록 업무지침을 함께 시달했다. 누계체납액 축소 실적을 성과평가 항목으로 반영하고, 기관별 실적 순위와 부진 관서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목표 달성 체계도 구축했다.
국세채권 소멸시효는 통상 5년(5억원 이상 10년)이고, 압류로 시효가 중단됐다가 압류를 해제하면 '해제일 다음날'부터 다시 시효가 진행된다. 따라서 압류해제로 체납액을 '즉시 소멸'시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데, 전산 입력을 소급해 '시효가 이미 끝난 것'처럼 만든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의 경우 2021년 3월 실적이 7개 지방청 중 6위로 부진하자, 체납자의 부동산 압류해제 시 소멸시효 기산일을 '압류일'로 일괄 소급하는 방안을 마련해 체납액 1031억원을 위법하게 소멸 처리한 사례가 확인됐다. 관할 세무서들이 "소급 압류해제는 부당하다"며 본청에 의견을 전달했지만, 본청은 "서울청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일"이라며 그대로 뒀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은 특히 명단공개자(5905명), 재산은닉 혐의 추적조사 대상자(354명) 등 '중점관리 대상'이 포함된 점검명세까지 별도로 내려보내면서 고액체납자 1066명의 체납 7222억원을 임의로 소멸시효 완성 처리했고, 이 가운데 명단공개·출국금지·추적조사 등 규제 대상 체납자 289명(2685억원)도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반포세무서의 경우 2021년 1월 고액·상습체납자(J)의 예금 압류를 해제하면서 기산일을 2010년 5월로 소급 입력해 체납액 231억원을 즉시 시효완성 처리한 사례가 적시됐다.
감사원은 이 같은 방식으로 2020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압류해제 2만933건에서 체납액 1조4268억원이 위법하게 소멸됐다고 봤다. 자산별로는 부동산 7021억원, 예금 4142억원, 보험 3179억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소액체납자(체납액 500만원 미만, 56만명)의 경우 재산을 압류해 놓고도 공매 실익 판단이나 후속 절차 없이 장기간 방치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감사원은 부동산 압류 1만7545건이 공매 등 절차 없이 5년 이상 장기 압류 상태였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9390건)은 약식감정 의뢰조차 없거나(1938건), 약식감정 결과 공매 실익이 없는데도(7452건) 아무 조치 없이 방치됐다고 밝혔다. 반포세무서가 체납액 200만원이 있는 체납자 건물을 2005년 압류한 뒤 2007년 공매 실익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도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사례도 포함됐다.
감사원은 서울청이 2015년 소득세 등 209억원(2022년 기준 446억원)을 체납한 고액체납자와 그의 아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하면서 명품가방 30점, 와인 1005병 등을 압류했지만 이후 해제 과정에서 절차를 부당하게 처리한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명품가방은 2017년 '며느리 소유'라며 해제를 요구했을 때는 증빙 미제출을 이유로 거부했으나, 2019년에는 추가 자료 없이 '여성용'이라는 이유로 배우자 소유로 추정된다며 압류를 해제했다. 와인은 2017·2019·2020년 세 차례 해제 요구를 '근거 불충분' 등으로 받아들이지 않다가, 2022년 12월 징세관이 '그간 안 해준 것이 직무유기'라며 1주일 내 해제를 지시했고, 구매증빙이 일부(1005병 중 30병)만 확인되는 상황에서도 로마네꽁티 등 시가 4억8000만원 상당을 8년 만에 압류해제한 것으로 감사원은 판단했다. 체납법인 소유분 222병은 재압류하기로 했지만 '분류작업이 되지 않았다'는 체납자 측 말만 듣고 미압류 상태로 두었다가, 감사가 시작되자 2024년 3월 뒤늦게 압류 조치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출국금지 해제 역시 규정상 '구체적 사업계획'과 '국외도피 우려 없음' 등이 필요하지만, 고액체납자가 무직 상태에서 해외 행사 참석 등을 이유로 해제를 요청하자 조사보고서에 '사업계약 체결'로 임의 기재하거나, 불과 3개월 전 '국외도피 우려'로 연장해 놓고도 '우려 없다'고 상반되게 기재해 결재를 받아 해제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고액체납자와 그의 아들이 같은 취지의 출국금지 해제가 여러 차례(각 3차례) 이뤄졌고, 고액체납자 아들의 경우 2023년 9월 공항에서 유선으로 해제를 요청하자 당일 증빙 없이 해제된 사례도 포함됐다.
감사원은 국세청이 상속·증여세 조사 과정에서 축적한 '부채 사후관리 정보'(채권자·채무금액·만기) 106만건이 체납징수에 유용한데도, 전산 개발 과정에서 2022년 9월 이후 입력분만 활용되도록 제한해 누락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감사원 확인 결과 2022년 9월 이전 입력 건 중 고액체납자(1억원 이상)가 채권자인 사례가 1717건, 채권액이 2178억원에 이르렀지만 담당자가 파악하지 못해 미활용됐고, 감사 기간 중에야 113억원이 압류됐다고 했다.
이에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국세행정시스템(NTIS)을 개선해 소멸시효 기산점을 임의 적용해 국세징수권을 부당 소멸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통보했다. 또 누계체납액 축소를 목적으로 법령을 위반해 불합리한 목표와 방침을 수립하는 일이 없도록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통보·주의를 요구하고, 관련자 1명은 주의, 2명은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도 법에 위배된 업무지침을 마련·시달해 위법 처리하게 한 일이 없도록 하라고 통보하고 관련자 1명에 대해 주의를 요구했다.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압류·출국금지 해제 업무를 부당 처리한 건과 관련해선 국세청장에게 관련자 5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관련자 2명에 대한 주의를 요구했다. 소액체납자 장기 압류 방치 문제에 대해서는 약식감정을 신속히 의뢰하거나 공매 실익이 없으면 압류를 해제하는 등 강제징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세청장에게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