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걸려도, 팔다리 없어도 전장으로' 軍 비리 문서에 러시아 '발칵'

고의 사살과 자살 공격 강요 사례 드러나
뇌물 요구와 강제 계약 연장도
수감자 출신 부대에 학대 집중돼

러시아군 내부에서 병사들에 대한 조직적인 인권침해와 비위, 이른바 '제로 아웃(Zeroing Out)'으로 불리는 고의적 사살 및 자살 공격 강요 사례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연합뉴스는 뉴욕타임스(NYT)를 인용해 러시아 대통령 직속 인권옴부즈맨에 접수된 민원 문서 수천 건이 부주의한 홈페이지 관리로 외부에 유출된 사실을 바탕으로 러시아군의 병영 실태를 심층 보도했다.

민원 문서와 인터뷰에 따르면 일부 지휘관들은 비리 사실을 아는 병사들을 증거 인멸 목적으로 고위험 작전에 고의 투입하거나, 동료 병사들에게 사살을 명령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TASS연합뉴스

이번에 유출된 문서에는 지난해 4~9월 사이 병사와 가족들이 제기한 불만이 담겼으며, 이 가운데 약 1500건이 군 관련 민원이었다. NYT는 이 중 240여 명과 접촉해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쳤고, 최소 75명이 민원 접수 사실을 인정했으며 일부는 영상·사진·진단서·군 내부 문서 등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NYT가 검증한 환자·부상자도 최전방 투입문서를 보면, 러시아군은 팔다리 골절, 암 4기, 뇌전증, 중증 시·청각 장애, 두부 외상, 조현병, 뇌졸중 후유증 등을 앓는 병사들까지 전선에 투입했다.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다가 석방된 전쟁포로가 충분한 회복 없이 곧바로 전투에 재투입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한 병사는 "휠체어를 탄 사람, 팔다리가 없는 사람도 전방으로 보내졌다"며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나무에 수갑·구덩이 감금 등 일상적 가혹행위 정황 드러나

민원 문서와 인터뷰에 따르면 일부 지휘관들은 비리 사실을 아는 병사들을 증거 인멸 목적으로 고위험 작전에 고의 투입하거나, 동료 병사들에게 사살을 명령했다. 이런 행위를 러시아군 내부에서는 '옵눌레니예(0으로 맞추기)' 또는 '제로 아웃'이라고 부른다고 NYT는 전했다. NYT가 검토한 민원 중 최소 44건에서 해당 표현이 등장했으며, 100건 이상에서는 지휘관이 병사를 직접 죽이겠다고 위협한 정황이 담겼다.

NYT가 검증한 환자·부상자도 최전방 투입문서를 보면, 러시아군은 팔다리 골절, 암 4기, 뇌전증, 중증 시·청각 장애, 두부 외상, 조현병, 뇌졸중 후유증등을 앓는 병사들까지 전선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TASS연합뉴스

병사들에 대한 가혹행위도 일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병사들은 한겨울에 발가벗긴 채 수갑을 채워 나무에 며칠간 묶이거나, 음식·물·화장실 이용 없이 방치됐다고 진술했다. 명령을 거부하거나 실패 가능성이 높은 임무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구타, 지하실 감금, 구덩이에 처박힘을 당한 사례도 다수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 오라는 이른바 '자살 임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나흘간 나무에 묶여 있던 병사의 영상도 공개됐다.

일부 지휘관 뇌물 요구…거부 시 위협 정황도 

일부 지휘관들은 전사 위험이 높은 임무에서 제외해 주는 대가로 뇌물을 요구했다. 병사들이 거부할 경우 사망률이 높은 공격 부대로 전출시키겠다고 위협한 정황도 포착됐다. 징집병이나 단기 계약 병사가 장기 복무 계약 연장을 거부하면 강제로 서명시키거나 전투 부대에 배치하는 사례도 민원에 포함됐다. 부상 보상금이나 정부 지원금을 가로채거나 허위 부상을 보고하는 비위 의혹도 제기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TASS연합뉴스

특히 교도소 수감자나 미결수 출신 병력으로 구성된 부대에서 학대와 살해 의혹이 집중됐다. 한 공동 진정서에는 특정 부대 지휘관들이 전장에서 300명 이상의 아군 병사를 살해했고, 시신에서 휴대전화를 빼내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병사들을 '조국을 지키는 영웅'으로 묘사해 왔지만, 유출된 민원 문서들은 장기 소모전 속에서 병사와 가족들의 분노와 불신이 표면 아래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또 민원인 상당수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했다며, 공식 창구에조차 제기되지 않은 인권침해 사례가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슈&트렌드팀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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