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연기자
유럽연합(EU)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 산업계 등 안팎으로부터 규제 완화 압박을 받고 있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규제 체계를 더 강력하게 지켜야 한다고 EU 집행위원회 2인자가 밝혔다.
테레사 리베라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26일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규제를 끝없이 완화하는 이른바 '바닥치기 경쟁(race to the bottom)'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 로이터연합뉴스
리베라 부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EU 중도우파 지도부가 미국과 유럽 산업계에 요구에 따라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나왔다.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기도 한 그는 "녹색 전환 정책과 디지털 의제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바로 유럽 경쟁력의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라며 "EU가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디지털 규제 체계와 환경 기준을 확고히 지키고 단일시장을 더 깊이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EU의 규제를 문제 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지속가능한 공급망, 산림파괴 방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와 관련한 법을 겨눈 폐기 요구에는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 시민의 신뢰를 잃으면 협상하고 가교를 놓는 입지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이 내년에는 경쟁력과 안보, 가치라는 이번 임기의 핵심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리베라 부위원장은 과거 본인이 주도한 일부 규제를 완화하려 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는 달리 EU의 디지털 규정과 환경 규제 수호에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다.
그는 이에 대해 "때때로 우리가 직접 (미국 등에) 맞서 '미안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규제를 무효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리베라 부위원장이 이끄는 EU 경쟁담당 부서는 미국의 압박에도 최근 클라우드 시장에서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배력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 디지털 규정 시행을 강화하고 있다. 또 구글의 인공지능(AI) 모델, 메타 왓츠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며, 디지털 투명성 규정 위반을 이유로 일론 머스크의 엑스(X·옛 트위터)에 1억2000만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4일 EU의 빅테크 규제 입법을 주도한 티에리 브르통 전 EU 내수 담당 집행위원 등에 대한 입국을 금지하기도 했다.
리베라 부위원장은 외부 압박에도 EU는 글로벌 기준 설정자로서 입지를 유지해야 한다며 "유럽인으로서 우리는 '바닥치기 경쟁'에 베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규제를 통해 이런 높은 기준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유럽의 어떤 기업도 이런 높은 기준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