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슬기자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넷플릭스 제공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기록적인 성공으로 영광의 한 해를 보낸 K팝이 내부적으로는 법적 공방과 성장세 둔화라는 균열을 겪으며 산업적 전환점에 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존 카라마니카 팝음악 평론가의 비평을 통해 K팝 산업의 이면을 분석하며, 지난 30년간 K팝을 지탱해온 '기획 시스템'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K팝은 넷플릭스 영화 '케데헌'이 역사상 최다 시청 기록을 세우고 빌보드 8주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주류 문화로 안착했다. 하지만 NYT는 이 영화를 K팝의 성공 방정식을 담은 우화로 해석하며, 규격화된 제작 체계와 예술적 자율성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 관계를 조명했다.
NYT는 산업적 균열의 대표 사례로 하이브와 뉴진스(어도어) 간의 법적 분쟁을 꼽았다. 카라마니카 평론가는 뉴진스를 "엄격한 제약 아래에서도 고동치는 인간성을 보여준 팀"이라 평가하며, 이들의 행보가 K팝 산업이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미학적 가치'와 '예술적 자율성'을 지향하게 만드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기획사 체제 밖에서 일어나는 혁신은 거대 시스템의 피로감을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됐다. 카라마니카 평론가는 자신의 '올해 최고의 앨범' 리스트 1위에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닌 독립 아티스트 에피(Effie)의 '풀업 투 부산'(pullup to busan)을 올렸다. 이는 K팝의 생명력이 더는 대규모 생산 시스템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개척자들이 새로운 경로를 열고 있음을 시사했다.
'아파트'를 부른 로제와 브루노마스. 더블랙레이블 제공
또한 블랙핑크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아파트'(APT.)의 글로벌 흥행은 K팝 스타들이 기존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타 장르와 결합하며 경계를 허무는 사례로 꼽혔다. NYT는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캣츠아이의 부상 등을 언급하며, K팝이 특정 국가의 장르를 넘어 전 세계가 공유하는 '언어'이자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년 방탄소년단(BTS)의 복귀가 업계에 막대한 수익과 활력을 불어넣을 '확실한 카드'라면, 에피나 더 딥, 킴제이 같은 인디 신의 도약은 K팝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새로운 뿌리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카라마니카 평론가는 "올해는 K팝 산업과 예술 형식 사이의 균열이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해인 동시에, 견고했던 기획의 틀 아래서 자란 아티스트들이 진정한 예술적 해방을 맞이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덧붙였다. 결국 거대 기획사의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 아티스트들의 개별적인 '진정성'이 빛을 발하는, K팝의 제2막이 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