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4곳, AI 투자 부채 1200억달러 장부서 숨겨'

오라클·메타·xAI·코어위브 SPV로 자금조달

미국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4곳이 특수목적법인(SPV)을 활용해 재무제표에서 1200억달러(약 173조원)에 달하는 인공지능(AI) 관련 투자 부채를 숨겼다는 추측이 나왔다. 막대한 액수의 AI 투자에 따른 재정적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라클, 메타플랫폼(메타), xAI, 코어위브 등 4개사를 자체 분석한 결과 이처럼 추정됐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들 기업이 AI 인프라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SPV를 만들고 핌코, 블랙록, 아폴로, 블루아울, JP모건 등 월가 금융사들이 이들 SPV가 발행한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은 SPV를 통해 흘러 들어가 빅테크의 재무제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부채로 잡히지 않아서 신용등급 하락을 피할 수 있으나, AI 투자 위험을 숨길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또 매체는 SPV 구조는 향후 AI 운영 업체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 이 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월스트리트 전반으로 확산할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오라클은 이런 '장부 외 부채'를 가장 많이 낸 기업으로 꼽힌다. FT는 오라클이 SPV를 통해 AI 관련 자금 660억달러를 빌렸다고 추정했다.

오라클은 크루소, 블루아울, 밴티지, 릴레이티드 디지털 등과 협력해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이들 데이터센터는 각 SPV가 소유하게 되며, 오라클은 SPV로부터 시설을 임차하기로 했다.

만약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발생하면 채권자는 데이터센터 부지, 설비, 내부 칩 등 실물 자산에 대해서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데이터센터 관리 주체인 오라클에는 상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메타는 블루아울과 베녜 인베스터라는 SPV를 설립하고 데이터센터 자금 300억달러를 조달했다. 덕분에 300억달러를 차입하면서도 부채가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았고, 몇 주 뒤 회사채 시장에서 추가로 300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게 했다.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본 규모가 급증하며 빅테크의 현금 보유고가 한계에 다다르자 SPV를 통한 재무제표 외 부채 조달 방식이 더욱 확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데이터센터 투자자들은 AI 서비스 수요 감소로 시설 가치가 하락할 경우 재정적 위험은 해당 시설을 임대한 기술 기업에 있다고 생각한다.

빅테크 데이터센터 건설은 자금력이 풍부한 사모 대출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시장은 1조700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했지만, 자산 가치의 급격한 상승과 유동성 부족, 차입자 집중 등으로 우려가 큰 상태다.

현재 AI 데이터센터 붐은 소수 고객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주요 임차 기업 한곳이 흔들리면 여러 데이터센터에 자금을 댄 대출 기관들이 동일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여기에 전력난, AI 규제 변화, 기술 변화 등 추가적인 리스크도 많다.

데이터센터 금융 거래에 정통한 한 은행 관계자는 "사모 대출 시장에는 이미 위험한 대출과 잠재적 신용 리스크가 내재한다"며 "AI 투자의 불확실성과 사모 대출의 부실화라는 두 가지 위험 요소가 밀접하게 얽히면서 향후 몇 년 동안 매우 흥미롭고도 걱정스러운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AI 기업이 SPV를 활용해 돈을 모을 경우 투명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장 충격이 사모대출펀드들로 동시에 확산할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한편 모든 빅테크가 이러한 추세에 동참한 것은 아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은 데이터센터 확충을 위해 내부 현금을 쓰거나 직접 돈을 빌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국제부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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