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위험한 용접은 로봇이, 마지막 판단은 사람이'…'공존'의 한화오션 조선소[AI시대, 일자리가 바뀐다]

공정시간 최대 30% 단축…용접 자동화 확산
위험 작업 줄이고 작업자는 '운영자'로 전환
숙련공 '암묵지', 협동로봇에 데이터로 이식

편집자주제조업을 포함한 산업 현장에서의 인공지능(AI) 활용은 올해 산업계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조현장에 투입된 AI는 생산성 향상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입증했다. 그 범위는 올해 본격적으로 넓어지게 된다. AI발 생산 혁신의 이면에는 일자리 감소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인력 개입 없이 생산이 이뤄지는 소위 '다크팩토리(Dark Factory)' 개념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경제가 확인한 AI 적용 제조현장에서의 일자리 변화는 복합적이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은 기계가 맡되 판단과 관리, 책임의 역할은 사람이 맡는 방향으로 확실한 영역 구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AI가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다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AI시대는 생산성과 기술 경쟁뿐 아니라 일자리 전환이라는 숙제를 안겼다. 아시아경제는 새해 산업현장을 찾아 AI가 몰고온 일자리 변화를 직접 살폈다.

140만평 거대한 부지에 펼쳐진 한화오션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핵심 공정인 용접 작업장 한쪽에서 용접공이 배관 이음부 앞에 섰다. 둘레에 가이드를 설치하고 버튼을 몇 차례 누르자, 서로 맞닿은 배관 사이에 들쑥날쑥하게 난 '갭(틈)'을 따라 협동로봇 팔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동안 작업자가 토치를 들고 허리를 굽힌 채 불안정한 자세로 버텨야 했던 구간이다. 이제는 로봇이 일정한 속도와 각도로 용접을 이어가고, 작업자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모니터를 보며 전류와 각도만 미세하게 조정했다. 몸으로 견디던 작업이 화면을 보며 관리하는 공정으로 바뀌었다. 협동로봇은 한 공간에서 작업자를 돕는 로봇을 가리킨다.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용접공이 배관 용접용 협동로봇을 활용해 작업하고 있다. 한화오션

한화오션이 협동로봇을 도입한 건 2019년이었다. 당초 숙련 인력 감소에 따른 업무공백을 막기 위한 목적이 강했지만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기술을 데이터로 남기고 공정을 표준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달 17일 한화오션 본사에서 만난 김동영 제조혁신연구센터 용접기술연구팀 선임연구원도 배관 용접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그는 "곡선 형태가 많은 배관 용접은 특히 숙련공 의존도가 높다"면서 "하지만 이런 인력이 점차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숙련공 머릿속에만 있던 암묵지를 데이터로 남겨 작업 스킬을 전승하는 것이 협동로봇 도입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동영 제조혁신연구센터 용접기술연구팀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17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본사 인근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거제=오지은 기자

배관 용접은 선박 건조 과정의 핵심 공정이다. 한 척의 선박에 투입되는 용접 길이를 모두 합치면 서울과 거제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작업량도 방대하다. 게다가 고온·고열 환경에서 불꽃과 금속 가루에 노출되는 작업이 일상화돼 있어 온열 질환과 근골격계 부담도 상당하다. 반면 작업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는 개인 경험에 의존한 채 현장에 흩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작업 방식과 판단 기준이 체계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고숙련 용접공 감소에 대응해 외국인 노동자 비중을 늘렸지만, 기술이 축적될 즈음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반복됐다. 숙련의 단절이 구조화된 셈이다.

AI 로봇 도입으로 숙련인력의 역할은 바뀌었다. 반복적이고 고강도 작업을 로봇이 맡으면서 작업자 건강 부담을 줄었고, 용접 품질의 균일성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김 선임은 "사람과 로봇을 비교할 때 용접하는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위치를 확인하고 세팅하는 사소한 시간이 줄어 전체 효율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공정 조건에 따라 전체 공정 시간 단축 폭은 최대 3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넘게 현장을 지킨 이정철 조립1팀 책임은 "AI 로봇이 노동집약적 업무를 맡으면서 직원들은 '오퍼레이터(운영자)'로서 작업 경로 설정과 감시, 품질 판단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업 방식뿐 아니라 현장 인력의 역할 자체가 바뀌게 된 것이다.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블록 용접 로봇 '단디(Dandi)'가 작동되고 있다. 한화오션은 이외에도 협소한 구역에서 선박 판을 접합하기 위해 소형 로봇 '캐디(Caddy)'와 '인디(Indy)', '론디(Rondi)' 등을 적용하고 있다. 한화오션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조선소 탑재 공정에서 사용되는 용접 로봇 모습. 한화오션

로봇 도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임은 "초창기에는 장비가 무겁고 활용 범위가 좁아 '차라리 사람이 더 빠르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하지만 경량화와 성능 개선이 이뤄지고, 점차 현장 요구에 맞춰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이어 "처음엔 번거롭고 낯설어했지만 어느 순간 없으면 작업이 안 되는 장비가 됐다"며 "요즘은 로봇이 고장 나면 용접공이 '오늘은 작업을 못 한다'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소 전 공정으로 확산하고 있다. 절단 공장에서는 플라즈마 절단으로 최대 1만5000℃ 열을 이용해 철판을 자르고, 레이저와 가스 절단이 병행된다. 전처리 단계에서는 샷블라스팅으로 표면 이물질을 제거하고, 도장 공정은 선박 수명 25~30년을 버티기 위해 5~7차례 반복된다. 선행의장 공정은 파이프와 부품을 조립 단계에서 미리 탑재해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한화오션은 고위험 공정을 중심으로 로봇 적용을 확대하거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작업자가 감당해 온 위험과 부담을 기술로 나누는 접근이다. 조선소 자동화는 인력을 대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위험도가 높은 작업은 기계가 맡고 사람은 공정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작업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산업IT부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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