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기자
클래식과 재즈 음악을 넘나들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러시아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이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한다.
이번 독주회에서 게르스타인은 낭만주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게르스타인은 현대음악 분야에서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버클리 음악대학에 14세에 입학했다. 학부 정규 과정 입학 기준으로 역대 최연소였다. 미국 재즈 거장 게리 버튼이 추천한 덕분이었다.
게르스타인은 1979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음악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고 부모님이 수집한 음반에서 재즈도 접했다. 게르스타인은 12세 때 러시아 상트페테브루크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버튼을 만났다. 당시 게르스타인이 버튼의 통역을 맡았다. 게르스타인은 버튼에게 자신의 재즈 피아노 연주를 들려줬고, 이를 인상 깊게 들은 버튼이 버클리 음대에 추천했다. 게르스타인은 버클리에서 재즈를 공부했고 이후 맨해튼음악대학에 입학해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 [사진 제공= 마스트미디어, (c)Marco Borggreve]
게르스타인은 "음악적으로 말하자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면서 자랐다"며 "하나는 악보에 쓰인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즉흥의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클래식 음악에서 악보의 전통을, 재즈 음악에서 즉흥 연주를 배웠다는 의미다. 재즈 연주자들은 공연에서 흔히 악보 없이 즉흥 연주를 선보인다. 게르스타인은 "재즈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음악이 단순히 종이에 찍힌 검은 음표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즉흥 연주는 음악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느끼게 해준다"며 "이러한 감각이 제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에도 스며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클래식과 재즈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이력 덕분에 그는 2023년 음악 전문 매체 바흐트랙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연주회에서 선보일 리스트와 브람스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면서도 성향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이른바 19세기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대립을 주도했던 인물들이었다.
게르스타인은 "리스트는 표제음악과 문학적 연상을 대표하고, 브람스는 절대음악을 구현한다"며 "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중요한 논쟁이었고, 리스트ㆍ바그너 진영과 브람스의 대립으로 자주 표현되곤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주에서는 관객들이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음악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의 문을 여는 곡은 리스트의 '세 개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다. 리스트가 14세기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으로 시적 정서와 섬세한 감성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어 리스트의 '단테를 읽고: 소나타 풍의 환상곡'이 연주된다. 2부는 브람스의 작품으로 구성되며, 그의 첫 출판 피아노곡 '스케르초'와 피아노 소나타 3번이 연주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