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 공항 이름도 바꿀건가?' '트럼프-케네디 센터' 개명 두고 시위 격화

이사회 만장일치 결정 이후 즉각 설치
법률상 명칭 변경 권한 논란도 일어
일각서 시위 및 법적 대응 움직임 확산

미국 워싱턴DC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연장인 케네디 센터(Kennedy Center)가 명칭을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변경하기로 결정한 지 하루 만에 건물 외벽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법적·정치적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케네디 센터 건물 일부가 천막으로 가려진 가운데 외벽 간판 설치 작업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현장에는 주 방위군이 배치됐으며,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의장을 맡은 센터 이사회가 명칭 변경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지 약 24시간 만에 실제 건물에 '도널드 트럼프'라는 글자를 부착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문화예술 공연장 케네디센터 외벽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름이 들어간 새 글자를 새기는 작업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케네디 센터는 1963년 전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직후 연방 의회가 추모 법안을 통과시키고 설립한 국가 문화기관이다. 관련 연방법에는 기관의 공식 명칭을 '존 F. 케네디 공연예술 센터'로 명시하고 있으며, 공공 구역에 기념물 성격의 추가 표식이나 명판 설치를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회 승인 없이 이사회 결정만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간판을 설치한 것은 위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케네디 가문·민주당 의원 "법 위반" vs 트럼프 측 "공로 인정" 공방

민주당 소속 앤디 김 상원의원은 "연방법으로 규정된 명칭은 의회의 승인 없이는 변경될 수 없다"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로커 콜린 보 미국 가톨릭대 법학 교수도 "이사회는 명칭 변경 권한이 없으며, 케네디 전 대통령을 기리는 '살아 있는 기념물'을 유지해야 할 법적 의무를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케네디 센터에 추가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케네디 가문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딸 마리아 슈라이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음엔 JFK 공항 이름을 바꾸고, 링컨기념관을 '트럼프-링컨 기념관'으로 바꾸려 할지도 모른다"며 "이런 시도에는 끝이 없다"고 비판했다. 종조카이자 민주당 출신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조 케네디 3세는 "케네디 센터는 의회가 법으로 규정한 살아 있는 기념물"이라며 "링컨기념관 이름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센터 이름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외손자로 연방 하원의원 출마를 준비 중인 잭 슐로스버그 역시 기관명 변경을 금지하는 법률이 존재한다며 이번 결정의 법적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렇듯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한 일부 인사를 제외한 대다수는 명칭 변경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입각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장관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 대표 문화기관이 정치적 상징으로 변질했단 비판도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버니 샌더스 무소속 상원의원은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연방 건물 명칭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일에는 센터 앞에서 "트럼프는 존 F. 케네디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든 시위대가 집회를 열었다. 논란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케네디 센터 운영 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있다. 약 36명으로 구성되는 센터 이사회는 그동안 공화·민주 양당이 참여하는 초당적 기구로 운영돼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이사장을 맡은 뒤 민주당 소속 이사들을 해임하고 충성파 인사들로 교체했다. 최측근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일대사를 사무총장에 임명하는 등 대대적인 인적 개편도 단행됐다.

지난 20일에는 트럼프-케네디 센터 앞에서 "트럼프는 존 F. 케네디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든 시위대가 집회를 열렸다. AP연합뉴스

이후 센터는 외벽 도색과 대리석 공사 등 전면 재단장에 들어갔고, 청년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 추모 행사와 미국보수연합재단(CPAC) 행사 등 보수 성향 정치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이달 5일에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고, 트럼프 대통령은 초대 'FIFA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공화당은 케네디 센터 오페라하우스 명칭을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오페라하우스'로 변경하는 입법도 추진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평생 '브랜딩'에 집착해 온 트럼프가 미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였던 케네디의 이름 위에 자신의 이름을 얹었다"며 "이는 단순한 개칭이 아니라 상징과 브랜드를 장악하려는 행위"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법정 공방을 넘어 미국 사회의 정치·문화적 대립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슈&트렌드팀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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