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바보야, 문제는 물가야'

관세가 키운 물가 상승과 가계 부담
자화자찬 빠진 트럼프…불확실성 여전

문제 하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현재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1992년 대선 당시 내걸었던 유명한 문구를 인용한 "바보야, 문제는 물가야"(It's the price, stupid)라는 말이지 않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리더십 위기에 빠졌다. 국정 수행 지지율은 각종 조사에서 심리적 지지선인 40% 밑으로 내려앉았고, 이대로라면 내년 11월 열리는 중간선거가 트럼프의 패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에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급진 좌파 언론이 왜곡된 가짜 여론조사를 내놓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백악관도 "트럼프 행정부가 인플레 둔화, 실질임금 상승, 민간 부문 일자리 증가 등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실패를 되돌리는 성과를 거뒀다"는 성명을 내놨다. 하지만 정작 민심은 돌아서지 않고 있다. 물가 오름세가 둔화했다는 발표와는 달리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물가가 여전히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JEC)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지난 2월부터 11월까지 가구당 평균 1200달러(약 176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또 주거비(월세와 주택담보대출 비용)는 작년보다 3.6%나 올랐다. 올해 미국 내 주택 보험료는 평균 8%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요금도 올해 초 이후 평균 11% 올랐다. 미국 가계가 1년 전과 같은 물건과 서비스를 사려면 매달 평균 208달러를 더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는 물가 상승과 생활비였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때 9%대까지 치솟았고 이 같은 고물가는 현 트럼프 행정부에 정권을 내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최근 대국민 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생활비 부담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그는 연설에서 "1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나라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10월 게재한 기사의 제목은 '미국 경제는 다른 선진국들을 훨씬 앞서 나갔다'(The American economy has left other rich countries in the dust)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콘텐츠 구독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에 올린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트럼프 연설'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번 ??연설은 바로 트럼프가 국정을 운영하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면서 "그는 그저 대중을 속이고 모든 것이 괜찮다고 주장하며 정적들을 비방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 언론에서는 이번 연설을 두고 '무의미한 사건'(nothingburger)이라는 논평이 쏟아진다. 내년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는 앞으로 3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이 남아 있다.

국제부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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