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 명당 고택·입 벌리는 용 갑옷…국가유산으로

보성 영광정씨 고택·온양박물관 갑주

보성 봉강리 영광정씨 고택

신령스러운 거북이 바다로 내려오는 형국, 그 머리에 해당하는 명당에 집 한 채가 있다. 전남 보성군 회천면 소재 '보성 봉강리 영광정씨 고택'이다. 정손일이 터를 잡은 이래 400년을 이어왔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과 해방 뒤 이데올로기의 격랑까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묵묵히 견뎌낸 현장이다.

국가유산청은 22일 이 고택과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갑주와 갑주함'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영광정씨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 여섯 동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보성 특유의 '凹(요)'자형 안채는 배면의 사적 공간과 수납공간을 뒀던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택 서쪽에는 한학을 가르치던 서당이자 제실인 삼의당이 있다. 앞쪽에는 호남 유림이 세운 광주이씨효열문이 놓여 민속적 가치를 더한다. 득량만 바다를 조망하는 탁 트인 경관 또한 조경 미학의 정수다.

함께 지정된 조선 말기의 갑옷과 투구는 당대 공예 기술이 집약된 유물이다. 김원대 온양민속박물관 설립자가 1975년 개관을 준비하면서 지인의 집안에서 구입해 소장하게 됐다. 갑옷과 투구는 물론, 이를 보관하던 함과 보자기까지 세트로 온전히 남아 있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갑주와 갑주함

붉은 겉감에 사조룡과 호랑이, 여의주 문양을 수놓은 갑옷은 왕실의 의장용이나 전시용으로 제작됐다고 추정된다. 특히 어깨에 부착된 용 모양의 견철은 입과 혀가 연동되도록 정교하게 설계됐다. 투구 역시 은입사 기법으로 봉황과 용을 새겨 넣어 예술성이 뛰어나다. 투구 장식을 별도의 함에 담아 갑주함에 수납하는 구조에서는 유물을 소중히 다뤘던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된 유산들을 체계적으로 보존해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사라져가는 민속 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는 적극적인 행정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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