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전자등록기관’ 허가제 개편…벤처투자 활성화·투명성 확대 기대

50여년간 예탁원 단일 기관 체제
“비상장 주식 거래 인프라 진화 필요성”
허가 심사·라이선스 부여…서비스 경쟁 유도

정책자금과 모험자본이 벤처투자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는 흐름 속에서, 비상장 주식의 권리·소유 관계를 '공인된 디지털 장부'로 관리하려는 인프라 개편이 추진된다.

정부가 예탁결제원(예탁원) 외 민간 전문기관의 비상장 전자등록 진입을 허가제로 운영하게 되면서, 1974년 예탁원 설립 이후 사실상 단일 체제였던 전자등록 인프라에도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도입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엑셀 등 아날로그식 장부 기록 관행이 선진화될 경우, 투자·회수와 정책자금 집행의 투명성·효율성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공인 장부' 없는 비상장…정책자금 유입 앞두고 인프라 손질

전자증권은 실물 주권 없이 전자적으로 권리를 등록해 발행·유통·권리행사를 전산으로 처리하는 제도다. 전자증권법상 권리 유통을 효율화하고, 이해관계인의 권익을 보호해 자본시장의 효율성 및 투명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2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지난 1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 관련 내용을 포함한 배경도 비상장 지분을 공인된 전자 장부로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비상장 영역에선 주주명부·투자내역을 수기로 관리하는 관행이 남아 있어, 거래 투명성과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창업자나 재무담당자가 '엑셀' 등 전통적인 프로그램에 의존해 하나씩 관리하는 자료 외엔 공인된 장부가 없어, 주주명부가 바뀌거나 권리관계가 꼬였을 때 투자자는 소유관계를 즉시 확인하기 어렵다. 위변조·사기 범죄에 취약하다는 우려도 컸다.

전자등록은 이러한 '장부의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지만, 현실에선 예탁원 외 등록기관이 없는 단일 구조가 이어져 왔다. 전자등록기관은 법적으로 허가제가 열려 있었음에도 신청자가 거의 없었고, 예탁원 시스템은 상장 주식·채권 중심으로 설계돼 비상장은 발행 규모가 작고 회사 수가 많아 전자등록 확산이 쉽지 않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증권등록 업무 경쟁 구도…"벤처기업 투자 촉진"

정책당국 입장에서도 내년 본격 도입될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으로 정책자금이 비상장 기업으로 흘러갈수록, 지분 흐름을 투명하게 추적하고 정확한 통계를 산출할 필요가 커졌다. 실제 집행 창구인 VC 등 투자 기관의 투자·사후관리 체계도 함께 고도화돼야 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관리 인프라는 탈세나 편법 상속 등 불공정 행위를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3월 예탁원도 "신규 전자등록기관의 출현이 가시화하며 새 경쟁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전략 연구용역을 진행한 바 있다. 예탁원은 용역제안서에서 "비상장기업에 특화한 전자등록기관을 목표로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인 회사가 존재한다"며 "해외의 복수 등록기관 사례를 분석하고 복수 기관이 상호 운용성을 어떻게 구현할지, 토큰증권 도입 시 보완점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번 전자등록업 전문기관 허가제는 민간 법인이 신청하면, 당국이 요건·매뉴얼에 따라 심사해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시장 대비 높은 난이도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주식 발행시장의 특성상 해당 업무엔 일반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며 "이번 개선 방안은 역량을 갖춘 전문 기관을 선별·진입시켜 경쟁을 촉진하고, 정체된 시장에 서비스 혁신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명성·직접금융 확대 기대…확산 관건은 '정책자금 연계'

비상장 시장의 유동성 확대도 기대된다. 소유관계 확인과 권리행사 절차가 표준화되면 세컨더리(구주 매각) 거래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실사·정산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 기업이 벤처·스타트업뿐 아니라 비상장 중소·중견기업까지 확산될 경우, 담보대출 중심의 간접금융에서 벗어나 주식 기반 직접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할 여지도 커진다.

다만 제도가 '허가'에 그치지 않고 실제 확산으로 이어지려면 참여를 끌어올릴 유인·의무 장치가 함께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모태펀드·성장금융·산업은행 등 정책펀드나 중진공·신보·기보 등의 정책대출을 받는 비상장기업부터 투자관리규정과 융자계획 고시를 정비해 전자등록을 우선 의무화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정책자금 수혜 요건'으로 전자등록을 붙이면 시장에 빠르게 표준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비상장증권 전자등록 의무화 논의를 정비해 대통령령으로 대상 기업 기준을 마련한 뒤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경쟁 체제로 갈수록 상호운용성, 보안·장애 대응, 사고 시 책임과 배상 등 발행사 보호 장치를 촘촘히 갖추는 게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자본시장부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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