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로이턴연합뉴스
독일군이 수송 중이던 탄약 2만발을 도난당한 가운데 사건 배후에 러시아가 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에선 최근 무인기(드론) 침범과 방산기업 고위직 임원에 대한 암살 시도 등 각종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데, 독일 정부와 서방 정보당국은 이를 러시아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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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인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독일군이 민간업체에 의뢰해 수송 중이던 탄약 2만발을 도난당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달 24일 밤중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약을 싣고가던 운전기사가 작센안할트 지역을 지나던 와중, 일정에 없던 휴식을 요청해 인근 호텔에 투숙하는 동안 탄약이 사라졌다.
독일군은 이튿날 아침 인근 기지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중에서야 탄약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했다. 아직 용의자와 사건 배후 등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독일군과 경찰의 동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DW는 전했다. 도난당한 탄약 규모가 막대해 우발적 범행이 아닌 치밀한 사전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일군 관계자는 "탄약 운송 계획이 나왔을 때부터 차량을 추적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운전기사가 갑자기 계획에 없던 휴식을 취한 뒤 범행이 이뤄진 정황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정확한 배후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독일군 안팎에서는 러시아가 이번 도난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우크라이나로 탄약을 수출하는 독일 방산기업 중 하나인 디엘메탈에서 방화로 알려진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때도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 당국 보안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텔레그램을 통해 유럽 각지의 민간 범죄자를 모집해 독일 탄약공급망을 공격하고 있다"며 "주로 유령기업을 앞세운데다 범죄 대가도 가상화폐를 통해 지급하다 보니 범죄자들도 정확히 자신들의 고용주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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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에서는 러시아가 배후로 의심되는 각종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독일 연방범죄수사청(BKA)은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독일 군 기지와 공항, 방위산업체, 주요 기반시설에 드론이 불법침입 한 사건은 1000건이 넘었다고 밝혔다. 특히 독일 발트해 연안 해군기지에 대한 불법 촬영이 크게 늘고 있어 해당 수역 군사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러시아의 배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4월 발생했던 독일 방산업체인 라인메탈(Rheinmetall)의 아르민 파퍼거 최고경영자(CEO) 자택 화재 사건도 러시아가 계획한 암살시도였던 것이란 의혹도 제기됐다. 미국 NBC 뉴스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관들은 지난해 초부터 러시아 측에서 파퍼거 CEO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입수해 독일 정부에 알렸으며, 사전 정보를 파악한 덕분에 암살시도가 실패했다.
서방 당국은 독일이 유사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주요 병참기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러시아가 인프라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독일 DAP통신은 독일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독일 전역의 철도와 도로, 기반시설에 대한 수많은 공격이 진행 중이며 그중 일부는 러시아 세력과 깊게 연루돼있다"며 "독일이 나토군의 병참 중심 허브가 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러시아는 독일의 항만과 전력망, 교통망에 대해 집요하게 공격해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러시아 측은 이러한 의혹들을 부인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나토국가를 공격할 것이란 이야기는 터무니없으며 유럽의 히스테리에 불과하다"며 "우리에게 여러 장거리 드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에는 우리가 드론을 보낼만한 표적이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