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항체-약물접합체(ADC) 블록버스터 '엔허투' 이후의 'ADC 경쟁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엔허투가 유방암·위암·비소세포폐암 등 다양한 고형암으로 적응증을 확대하고 1차 치료제로 자리를 잡는 가운데 엔허투에 내성과 불응성이 생긴 환자들에 대한 치료 시장이 커지고 있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ADC 전략도 엔허투 내성과 불응성 극복으로 모아지는 흐름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에피스홀딩스·셀트리온 등 국내 바이오 빅2를 포함해 리가켐바이오·에임드바이오·큐리언트 등 ADC 전문 바이오텍들은 앞다퉈 ADC 항암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ADC는 항체에 고독성 항암제(페이로드)를 링커로 붙여 암세포에만 정밀하게 독성을 전달하는 차세대 표적 항암제다. 항체는 내비게이션, 약물은 미사일, 이 둘을 연결하는 링커는 조준 장치 역할을 한다. 'ADC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엔허투는 1차 치료제로서 항암제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ADC 내성은 크게 두 갈래에서 발생한다. 첫째는 표적 발현 감소다. 엔허투가 타깃으로 삼는 HER2(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형)는 엔허투를 투약해 치료를 시작하면 발현이 줄어들어 HER2-low(저발현), ultra-low(극저발현) 환자군이 증가한다. 목표물이 적게 생기니 치료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둘째는 약물 내성이다. 현재 ADC의 다수는 TOPO-1(토포아이소머레이즈 I) 억제제를 사용하는데 이 약물을 밀어내는 힘을 강화하면서 약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ADC 전문 바이오텍들과의 협력과 설계 다변화를 통해 ADC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인투셀과의 협력은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적용할 적응증·타깃을 정하고, 해당 링커·페이로드 기술을 입혀 직접 ADC를 만드는 구조다. 암세포 내부의 pH(수소 이온 농도 지수)·효소·환원 환경에서만 페이로드가 방출되는 '세포 내 활성화 링커'를 보유한다. 표적 발현이 떨어져도 세포 내부에서 약물이 작동하도록 설계된 기술이기다. 프론트라인은 기존 TOPO-1 기전과 다른 새로운 페이로드 플랫폼을 활용해 내성을 우회하는 효과를 노린다.
셀트리온은 HER2·TROP2(인간 영양막 세포 발현 단백질)·c-MET(간세포성장인자수용체) 등 다양한 표적을 활용한 '표적 전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핵심 파이프라인 CT-P70(c-MET ADC)은 위식도암에서 40% 이상을 차지하는 c-MET 과발현 환자를 겨냥해 Topo-1 기반 페이로드와 PBX-7016을 적용, 기존 DXd(엔허투) 대비 종양 투과성과 효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ADC 전문 바이오텍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자체 링커·페이로드 플랫폼 '콘주얼'을 기반으로 개발 중인 HER2 ADC 'LCB14'가 엔허투 불응 환자군에서 ORR(객관적 반응율) 75%, DCR(질병통제율) 100%라는 데이터를 확보하며 주목받았다. 에임드바이오는 ROR1(수용체 티로신 키나제 유사 고아 수용체 1형)·FGFR3(섬유아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3형) 등 정상 조직에서 거의 발현되지 않는 타깃을 발굴해 삼중음성유방암(TNBC), 방광암 등 난치암 영역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ER2는 이미 엔허투가 시장을 규정한 상황"이라며 "이제 경쟁은 새로운 표적과 페이로드 설계로 이동하고 있고 한국 기업 들도 발빠르게 차세대 ADC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