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조유진기자
연합뉴스
미국에 대한 2000억달러 현금 투자는 외화자산 운용 수익을 주요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외환보유액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 외환보유액을 굴려서 벌어들인 돈을 매년 최대 200억달러 한도로 분산 집행해 국내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현금 투자액을 연간 일정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달러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전체 달러 투자 규모가 작지 않지만 시장을 통한 매입 방식이 아닌 만큼 환율과 원화 가치 약세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30일 외환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 외환보유액 4220억2000만달러의 약 90%(3784억2000만달러)가 정부채·정부기관채·회사채·자산유동화채·해외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가 벌어들인 외화는 한은 금고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국외 채권 등에 투자한다. 외환보유액은 유사시 언제든 찾아 써야 하고 신인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수익성보다는 안정성 위주로 운영돼왔다. 이런 이유로 전체 유가증권의 절반가량(47.3%)은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 외화자산 운용 수익의 대부분은 미 국채와 해외주식 등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 수익에서 나온다. 최근 해외 증시 호황 등으로 외화자산의 운용 수익 증가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유가증권의 평균 운용 수익률은 연간 2~5% 수준으로 평가된다. 현재 유가증권 투자액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최대 189억달러의 운용 수익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투자공사에 위탁 운용하는 자산(2276억달러)만을 기준으로 보면 연간 수익률이 11.73%로, 이 기준으로는 운용 수익이 200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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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운용 수익이 부족하거나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 등에 따라 수익의 변동 가능성이 큰 만큼 일부는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자, 배당 등 운용수익이 적지 않아 상당히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고, 만약 그중 일부를 기채(채권 발행)하면 정부 보증채 형식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같은 국책은행들이 미·유럽·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간 200억달러 투자 한도는 외환보유액 원금을 직접 줄이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서 "연간 200억달러 조달이 캐피털콜(분할 방식)로 운영되고 일부는 정부보증채 발행 등 외부 조달 방식도 병행돼 외환 시장의 부담이 덜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6.7원 내린 1425원에 개장했다.
외환시장 안전장치로 우리 정부가 제안한 통화스와프 체결은 이번 합의에서 제외됐다. 투자금을 장기 분납하기로 합의해 통화스와프 체결이 자연스럽게 필요하지 않게 됐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당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주체인 통화스와프나 재무부의 외환안정화기금(ESF)을 활용하는 방안 모두 우리 외환시장의 부담을 알리기 위한 협상 전략으로 사용된 측면이 강하다. 통화스와프는 만기가 1~3개월로 짧고 이자 부담이 높아 수년씩 이어질 투자 자금 조달에 적합하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