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기자
'도멘 보셰(Domaine Bauchet Champagne)'의 로고 속 하트는 Bauchet의 'B' 글자와 샴페인 플루트잔이 어우러져 탄생했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샴페인 업계에 번영을 안겨준 시절이었다.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1914년)까지 이어진 벨 에포크 시대 당시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이 맑고 투명한 버블에 매료되면서 샴페인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800년대 초반 100만병 수준이던 생산량은 1870년 2000만병, 1900년에는 3000만병을 넘어섰다.
하지만 벨 에포크가 막을 내리며 샴페인 업계에도 어둠이 몰려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명 샴페인 하우스와 포도밭들이 포탄에 크게 훼손됐고, 대공황과 미국의 금주법 시행 등을 겪으며 수요도 바닥을 찍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될 때까지 샴페인 업계는 한 세기의 절반을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버텼다.
전쟁이 끝나고 샴페인 시장의 회복을 주도한 것은 프랑스 내수 시장이었다. 자국민의 소비 확대에 1950년대 중반 샴페인 판매는 1913년 수준인 연간 3500만병을 회복했고, 1970년대까지 프랑스 국내 소비는 5배 이상 증가했다. 샴페인 시장 회복과 더불어 20세기 후반 샴페인 소비는 20세기 전반과는 뚜렷한 대비를 보였는데, 바로 'RM'이라고 불리는 '레콜당 마니퓔랑(Recoltant Manipulant)' 샴페인의 성장이다.
이 시기 샴페인 생산량의 절반 정도가 RM 생산자에게서 나왔는데, 특히 파리 사람들이 RM 샴페인을 선호했다고 한다. 샴페인을 생산한 가문과 직접 거래한다는 기분이 소비자들의 심리적 만족도를 높였고, 생산자 입장에서도 큰 비용이 드는 유통망을 거칠 필요가 없이 현찰을 바로 쥘 수 있는 기회였다.
'도멘 보셰(Domaine Bauchet Champagne)'의 포도밭 전경.
샴페인은 예나 지금이나 '그랑 마르크(Grand Marque)'라는 대형 생산자들이 시장을 주도한다. 대형 생산자들이 포도나 베이스 와인을 구입해 자신들이 소유한 부지에서 샴페인을 만들고, 자신들의 레이블을 붙여서 시장에 파는데, 이런 형태의 샴페인을 '네고시앙 마니퓔랑(Negociant Manipulant)', 흔히 'NM'이라고 부른다. '모엣 에 샹동(Moet et Chandon)', '뵈브 클리코(Veuve Cliquot)', '크룩(Krug)'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샴페인들이 대부분 NM에 해당한다.
20여개의 대형 생산자들이 전체 샴페인 생산량의 70%가량을 차지하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전통 방식으로 제조하는 샴페인은 일반적인 스틸 와인과 비교해 제조 및 저장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대량 생산을 했을 때 수익성을 맞출 수 있다. 또한 럭셔리한 이미지가 내재된 만큼 거액의 마케팅 비용 투자가 필수라는 점에서도 대형사가 유리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대형사는 수익 향상을 위해 브랜드의 흡수·합병을 빈번하게 진행하는데, 세계 최대 사치재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앞선 세 브랜드를 모두 계열사로 두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도멘 보셰(Domaine Bauchet Champagne)'의 지하셀러 전경.
샴페인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분명 NM 샴페인이지만 와인 애호가들에게 주목도가 높은 쪽은 오히려 RM 샴페인이다. RM 샴페인은 직접 소유한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직접 샴페인을 만들어 자신의 레이블을 붙여 시장에 판매하는 샴페인 하우스들의 와인으로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포도밭의 표현력을 중시하거나 개성 넘치는 스타일에 관심을 많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전체 샴페인 시장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며, 2000개 이상의 NM 생산자들이 존재한다.
'도멘 보셰(Domaine Bauchet)'는 1920년 펠리시앙 보셰(Felicien Bauchet)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코트 데 블랑(Cote des Blancs)의 프리미에 크뤼 마을, 그로브(Grauves)의 포도밭 1헥타르(ha)에서부터 시작한 RM 샴페인 하우스다. 보셰 가문의 포도밭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펠리시앙의 세 아들 라파엘(Raphael)과 제라르(Gerard), 롤랑(Roland)이 가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부터다. 이들은 1960년대 들어 샹파뉴의 핵심 지역인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와 발레 드 라 마른(Vallee de la Marne), 코트 데 블랑이 교차하는 비쇠이(Bisseuil) 마을에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이후 포도밭을 34ha 규모로 확대했다.
도멘 보셰를 설립한 제라르와 롤랑 보셰(Gerard&Roland Bauchet)
도멘 보셰의 포도밭은 샹파뉴 지역의 7가지 다양한 크뤼(Cru)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다. 코트 데 블랑(Cote des Blancs), 그랑 발레 드 라 마른(Grande Vallee de la Marne), 그리고 코트 데 바(C?te des Bar)에 이르는 광범위한 떼루아는 포도에 각기 다른 기후와 토양의 특성을 부여해 샴페인의 복합미와 깊이를 더하는 원천이 된다.
이 가운데 9ha에 걸쳐 펼쳐진 그로브와 비쇠이 마을의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은 최상급 품질의 포도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도멘 보셰의 포도밭은 12가지에 이르는 다채로운 토양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평균 2ha 규모로 밭을 15개로 구획화해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도멘 보셰는 구획 별로 개성 있는 포도를 재배할 수 있고, 이를 블렌딩해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도멘 보셰(Domaine Bauchet Champagne)'의 샴페인.
도멘 보셰는 포도 수확이 시작되기 전 각 포도송이의 숙성도를 개별적으로 모니터링해 최적의 수확 시기를 결정한다. 포도 수확이 시작되기 전 각 포도송이의 숙성도를 개별적으로 모니터링해 최적의 수확 시기를 결정한다. 수확한 포도는 포도밭과 압착기에서 즙과 포도를 시음해 일일이 선별 작업을 진행한다. 와인은 부드럽고 천천히 압착해 얻어낸 첫 번째 압착즙인 '쿠르 드 퀴베(Coeurs de Cuvee)'만을 사용한다.
빈티지가 없는 퀴베 브뤼의 경우 발효 전에 다양한 포도 품종과 떼루아를 사전에 블렌딩한다. 이를 통해 알코올 발효의 마법과 효모의 작용이 다양한 원산지의 포도에 작용하기 전에 다양한 포도 품종과 포도즙의 조합 가능성을 높이고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데, 이는 떼루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갖춰져야만 가능하다. 발효 후에는 리저브 와인으로 캐릭터를 조율해 블렌딩을 최종 마무리한다.
'도멘 보셰(Domaine Bauchet Champagne)'의 지하셀러 전경.
도멘 보셰의 셀러 마스터 브루노 샤를마뉴(Bruno Charlemagne)는 다양한 숙성재의 특성에 맞춰 발효 과정과 온도를 관리한다고 강조한다. 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스틸 통은 중립적인 특성 덕분에 테루아와 포도 품종의 특징을 그대로 보존하고, 오크통은 미묘한 산화와 나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향이 와인에 구조감과 풍부한 맛, 바디감을 더하게 돕는다.
비쇠이에 있는 보셰의 지하 셀러는 250m 길이로 조성됐다. 이 셀러는 다양한 종류의 퀴베가 2차 발효 과정을 거치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숙성될 수 있도록 완벽하고 일정한 온도와 조용한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빈티지 샴페인의 경우 셀러에서 최소 30개월에서 최대 7년까지 숙성된다.
'도멘 보셰 오리진 브뤼(Domaine Bauchet Champagne Origine Brut)'
샴페인은 샤르도네(Chardonnay)와 피노 누아(Pinot Noir),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 세 가지 주요 품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샤르도네는 주로 백악질 석회석 토양에서 재배되는데, 좋은 조건에서 자란 샤르도네는 와인에 순수성과 광물성, 정교함을 부여한다. 피노 누아는 일조량이 가장 많은 따뜻한 지역에서 재배하는데, 남향 비탈면에서 자라는 고품질 피노 누아는 진중함과 풍성함, 복합미를 가졌다. 피노 뫼니에는 두 품종에 비해 서리와 곰팡이에 강하다. 저지대 강 부근의 마른 밸리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환경이 비교적 습하다. 또한 부드럽고 신선한 과일 향이 특징인데, 이런 특징 때문에 종종 논 빈티지 블렌딩 와인에 사용된다. 세 품종 중 숙성력이 가장 떨어져 빈티지 와인과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도멘 보셰는 이 가운데 피노 뫼니에를 제외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에 집중한다. '도멘 보셰 오리진 브뤼(Domaine Bauchet Champagne Origine Brut)'은 이 두 품종을 6대4 비율로 블렌딩한 하우스의 대표 와인이다. 청사과와 배 등 달콤한 과실향과 히야신스 같은 꽃내음이 잔을 채우며, 시간이 지나면서 버터와 아몬드, 비스킷 등 고소하고 달콤한 아로마도 느껴진다. 국내에선 조선 팰리스 강남에서 하우스 샴페인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멘 보셰 메모아르 밀레짐 2018(Domaine Bauchet Champagne Memoire Millesime 2018)'
오리진보다 상위 퀴베인 '도멘 보셰 메모아르 밀레짐 2018(Domaine Bauchet Champagne Memoire Millesime 2018)'은 그로브와 비쇠이의 프리미에 크뤼에서 재배한 포도만을 사용한다. 샤르도네 75%, 피노 누아 25%가 블렌딩되며 최소 60개월 숙성을 거쳐 출시된다. 풍부하고 섬세한 기포가 인상적인 메모아르는 배·복숭아·파인애플 등 여름 과일향과 함께 페이스트리·비스킷의 복합적인 아로마가 어우러진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와 활기찬 산도, 짭짤한 미네랄 그리고 당도의 균형이 캐시미어처럼 우아한 질감과 함께 펼쳐진다.
도멘 보셰는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중에서도 전체 33ha 가운데 25ha에서 피노 누아를 재배할 정도로 피노 누아 비중이 높다. 피노 누아만 사용해 만든 '도멘 보셰 콩트라스트 블랑 드 피노 누아(Domaine Bauchet Champagne Contraste Blanc De Pinot Noir)'은 첫 향부터 갓 구운 빵의 향기가 전해진다. 토스티한 향과 함께 크림, 꿀 등의 향이 선명하게 느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마른 허브향을 배경으로 말린 살구, 훈연향 등이 더해지는 복합미 좋은 샴페인이다. 신선함과 풍부함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훌륭한 미네랄리티가 코코아의 씁쓸한 맛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된다.
'도멘 보셰 콩트라스트 블랑 드 피노 누아(Domaine Bauchet Champagne Contraste Blanc De Pinot N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