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극장가에 잠시 숨통이 트였다. 정부가 6000원 할인권 450만장을 배포하면서 관객 수가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됐다.
서울의 한 영화관에 영화관람료 할인권과 관련한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14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할인권이 발행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3일까지 관객 수는 954만8475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874만6698명을 웃도는 수치다. 상반기 관객 수가 4249만7753명에 그쳤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지난해 상반기 관객 수는 6292만9390명이었다.
상영업계에 따르면 이 기간 할인권을 사용한 관객은 전체의 약 30%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할인권 발행 때보다 약 10%P 늘었다.
CJ CGV 데이터전략팀에 따르면 이들 중 30%는 1년 만에 극장을 다시 찾았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 담당은 "할인권이 극장을 다시 찾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며 "광복절 연휴(15~17일)와 '문화가 있는 날'(27일)에 사용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착순으로 배포된 할인권은 발행 사흘 만인 지난달 28일 모두 소진됐으며, 유효 기간은 내달 2일까지다.
하지만 영화계 일부에서는 할인권이 일시적인 관객몰이에 그칠 뿐이라고 지적한다. 혜택이 모든 작품에 고르게 돌아가지 않고,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수혜 정도는 작품별로 극명하게 갈렸다. '좀비딸'은 개봉 당일 43만87명이 관람해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고, 1주일 만에 손익분기점(220만명)을 돌파하며 올해 가장 흥행한 한국영화(364만7117명)로 올라섰다. 반면 여름 텐트폴 영화로 꼽혔던 '전지적 독자 시점'은 할인권 배포 직전인 지난달 23일 개봉했으나, 13일까지 고작 105만3178명을 모으는 데 그쳐 손익분기점인 600만명에 한참 못 미쳤다.
이 같은 희비는 콘텐츠 경쟁력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좀비딸은 원작 웹툰에 충실한 가족물로 호평받았으며, 대중의 취향을 반영해 신파 드라마의 약점을 최소화했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전독시는 주제 의식을 변경하는 등 무리한 각색으로 원작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최근 관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영화 정보와 평가를 손쉽게 접하면서 관람 기준이 한층 까다로워졌다. 2018년 1만2000원이던 주말 입장권 가격이 현재 1만5000원으로 오른 것도 이러한 경향을 강화했다. '돈 주고 볼 가치'가 관람 여부를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할인권 같은 수요 자극 정책도 볼 만한 영화가 있어야 효과를 발휘한다"며 "정부가 콘텐츠의 질과 양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시민들이 영화를 예약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올해 제작되는 영화는 코로나19 이전의 절반 수준인 약 스물다섯 편에 그친다. 극장 흥행과 재투자, 신작 제작으로 이어지던 선순환이 막히면서, 볼 만한 영화가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홀드백' 질서의 붕괴도 극장가 침체를 부추긴다. 지난 3월 개봉한 '승부'는 개봉 6주 만에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영화계 관계자는 "관객이 극장을 찾을 이유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며 "악화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전면적인 점검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시장 체질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라며 "연간 영화 예산의 30%(271억원)를 투입할 만큼 할인권의 효과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