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기자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운 글로벌세아가 자회사들로부터 자금 수혈에 나섰다. 의류 주문자위탁생산(OEM) 기업으로 시작한 글로벌세아는 식음료와 포장재 사업에 이어 쌍용건설까지 인수하며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한 차녀 김진아 경영협의회 의장이 지난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그룹의 모태인 세아상역은 패션 사업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고, 피인수 기업들마저 줄줄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지주사인 글로벌세아의 배당 수익이 크게 줄었다. 김 회장이 보유한 지분 승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세 딸은 미국 법인을 통해 자산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글로벌세아는 올해 들어 계열사들에 세 차례에 걸쳐 자금을 빌렸다. 6월 세아상역으로부터 200억원을 빌렸고, 앞서 지난 1월과 2월에도 쌍용건설과 태림페이퍼에서 각각 500억원과 110억원을 차입했다. 쌍용건설과 태림페이퍼는 글로벌세아가 2022년과 2020년 인수했는데, 태림페이퍼에 손을 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세아는 이들 차입금을 '운영자금'으로 쓴다고 밝혔다.
실제 글로벌세아는 유동성 부족에 직면했다. 지난해 말 별도 재무제표 기준 재고자산을 제외하고,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 자산은 52억원에 그친다. 2023년 40억원보다 소폭 늘었지만 현금성 자산은 더 줄었다. 이 기간 현금성 자산은 8억원에서 5억원으로 축소됐다. 반면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성 부채는 3643억원에서 4580억원으로 26% 늘었다.
이 때문에 글로벌세아의 유동비율은 1%대다. 유동비율은 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값으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단기 지급 능력이 높다고 평가된다. 통상 100% 이상을 양호하다고 본다. 다만 지주사의 경우 비유동자산의 규모가 크고, 자회사의 배당금 수익에 의존하면서 유동비율은 50~100% 수준이다. 하지만 글로벌세아의 경우 외부에서 자금을 빌리지 않으면 회사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지주사의 경영난은 배당금 수익이 크게 줄어들면서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세아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165억원이다. 배당금 수익이 2023년 186억원에서 지난해 72억원으로 반토막 난 영향이 컸다. 글로벌세아의 배당금 수익은 2020년 334억원에서 이듬해 186억으로 줄어든 뒤 2022년 0원(단기차입금과 상계)까지 축소되기도 했다.
이는 일부 계열사들의 부진한 실적 탓이다. 인디에프는 최근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14억원이었다. 미국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JDG INC는 2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골프복 '톨비스트'를 운영하던 에스앤에이 순손실은 248억원에 달했다. 톨 비스트는 골프의류 시장 부진 영향으로 브랜드 사업을 종료했다.
건설(플랜트) 사업을 하는 STX엔테크는지난해 법정관리에 돌입하며 계열회사에서 제외됐다. 이 회사는 글로벌세아의 100% 자회사로 코로나19 이후 원재료값 상승과 공사 지연이 속출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STX엔테크는 지난해 매출액이 395억원으로 전년도 매출(2054억원)에서 80%나 급감했다. 영업적자는 405억원이었다.
세아상역도 실적 회복이 더디다. 세아상역의 별도 기준 매출액은 지난해 기준 1조9600억원, 영업이익은 831억원이다. 2021년 2조원대 매출액과 영업이익 1700억원과 비교하며 크게 둔화된 것이다. 특히 세아상역이 투자한 발맥스기술은 실적이 더욱 악화했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260억원으로 전년(414억원)보다 37% 줄었고, 영업적자 66억원, 당기순손실 68억원을 기록하며 적자가 이어졌다.
글로벌세아그룹 본사 사옥.
글로벌세아그룹은 1986년 김 회장이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서 500만원으로 창업한 '세아상역'으로 시작했다. 김 회장의 장녀 '세연'과 차녀 '진아'의 글자를 따서 사명을 지었다. 미국 의류 브랜드 갭과 일본 유니클로 등의 의류를 위탁 생산했고, 베트남과 과테말라 등 글로벌 생산기지를 확보하며 성장했다. 2006년 의류 브랜드 사업에도 진출해 트루젠과 꼼빠니아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 인디에프도 인수했다.
비의류 사업으로 확장한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다. 글로벌세아는 2018년 STX중공업 플랜트 사업 부분을 인수해 세아STX 엔테크를 설립했다. 2020년에는 태림포장과 태림페이퍼를 사들이며 제지와 포장 사업에 진출했다. 2021년에는 발맥스기술을 편입, 친환경 수소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22년에는 쌍용건설을 인수하며 해외 플랜트와 건설 사업을 강화했다.
그 결과 글로벌세아그룹은 2023년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글로벌세아그룹은 지난해 전주페이퍼와 전주원파워, 전주에너지 등을 추가로 인수하며 전체 자산은 8조2900억원, 재계 순위 61위다.
앞서 글로벌세아그룹은 2020년 올해 그룹사 매출 목표로 1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그룹사 매출액은 5조7150억원으로 목표치를 한참 밑돈다. 글로벌세아 관계자는 "10조원 매출의 경우 대외환경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지는 등 상황 변화로 인해 달성이 어려워진 것"이라며 "지속해서 성장하겠다는 의미로 읽어 달라"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글로벌세아와 세아상역 사내이사에서 사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후퇴했다. 김 회장의 뒤를 이어 김 의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김 의장은 2009년 세아상역에 입사한 뒤 2015년 글로벌세아 전략기획실장, 2022년 그룹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8월 글로벌세아그룹 각자 대표이사에 올랐지만 올해 초 자리에서 내려왔다. 현재 글로벌세아와 세아상역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셋째 딸인 김세라 태범 대표는 세아상역 사내이사로 부사장을 맡고 있다. 태범은 김 대표의 100% 개인회사로 식음료(F&B) 사업과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다. 세 자녀 중 첫째 딸인 김세연씨는 현재 경영에 직접 나서지 않지만 미국에서 부동산 기업(SJD LCC)과 시장조사업체(JD Link)를 운영 중이다.
글로벌세아는 김 회장이 최대주주(84.8%)며 부인인 김수남씨가 12.3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세 자녀 중에는 첫째와 둘째 딸인 세연씨(0.59%), 김 의장(0.59%)이 지주사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이 보유한 지분 승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세 딸은 미국 스틸 캐니언 골프장 운영회사를 공동 보유 중이어서 승계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