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기자
밀란 쿤데라의 2주기에 맞춰 민음사에서 그의 유고집이 출간됐다. 쿤데라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프랑스 망명을 도운 피에르 노라가 작가 사후 두 편의 산문을 묶어 펴낸 책이다. 이 두 텍스트는 쿤데라가 각각 1985년과 1980년에 프랑스 갈리마르에서 간행한 인문·정치 잡지 '데바' 지에 발표한, 매우 개인적인 글들이다. 소설 미학이라기보다, 쿤데라가 중시했던 말, 골칫거리로 여겼던 말들을 모은 '개인 사전'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다. 어느 순간 은둔한 밀란 쿤데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말 모음집이다. (밀란 쿤데라 지음 | 민음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커트 보니것이 1973년 발표한 작품이다. 자신의 51번째 생일에 스스로에게 선물한 본 소설은 황금만능주의와 권력욕, 원초적인 쾌락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광기에 잠식되는 자동차 딜러 드웨인 후버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의 모순을 통렬히 꼬집는다. 전쟁, 인종차별, 환경파괴, 정신병, 자살, 부동산, 살인과 사기를 서슴지 않는 몰인간성, 문화자본의 퇴락 등의 문제는 우리 시대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커트 보니것 지음 | 문학동네)
지난 30여년간 국내 대표적인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한 서미애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악은 태어나는가, 길러지는가'라는 주제를 다룬 전작 '잘 자요, 엄마',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를 잇는 '하영 연대기'의 마지막 작품이다. 전작에서 열한 살짜리 여자아이와 고등학생이었던 주인공 하영이 스무살 '나유진'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미국에서 한국인 유학생 세나를 만난 후 시작된 의문의 죽음 속에서, 그간 살인을 부추겼던 머릿속 목소리와 대면한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2022년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받은 김필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2200년 미래 한국에서 깨어난 묘령의 인물이다. 그는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며, 미래에서 AD 100년 로마 제국 시기까지 2000년을 거꾸로 살면서 시간의 경계를 허문다. 엑자소설 형태를 띤 본 작품은 인간 인식을 넘어선 시간에 대한 상대적 인식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거란 황실의 궁정 활극, 암계와 혈투, 로맨스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김필산 지음 | 허블)
행복 대신 잠, 삶 대신 잠, 죽음 대신 잠을 택하며, 회피하는 삶을 살아가는 스무 살 잠보에게 찾아온 첫사랑 이야기다. 아버지로부터 기묘한 예민함을 물려받은 주인공이 그저 잠을 자기 위해 독립을 선언하고, 이후 잠잘 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의 이색적인 면모를 재미나게 그렸다. 예민한 주인공이 분리불안을 넘어서는 유기불안을 앓는 개를 키우며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선숙이 누나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 이야기의 단면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미상 지음 | 북다)
권해영, 성해나, 성혜령, 이주란, 한지수 작가가 참여한 앤솔러지 소설집이다. 각 작품은 다양한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통되게 담고 있다. 비정한 현대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응시하다가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부터 일상적이지만 푸르스트적(시간, 상실, 존재에 대한 섬세한 묘사)인 문학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까지 다양한 소재가 독자를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게 만든다. (권혜영·성해나·성혜령·이주란·한지수 지음 | 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