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취재본부 김용우기자
그와 대화하는 자리에선 웃음의 총량이 늘어난다. 그 총량 중에 대부분이 그녀의 미소와 웃음소리다. 여러 사람이 만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쿠웨이트에서 태어났고 AI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AI콘텐츠 PD이자 크리에이터이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체코, 프랑스, 러시아 등 세계 10여국에서 살며 국제학교만 다녔다.
특례입학으로 다닌 이화여대 영문과가 유일한 졸업 학교이다. 그의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이지만 "당신은 사고를 할 때 어느 언어를 쓰냐"고 물으니 "영어로 생각하는 게 한국어보다 더 쉽다"고 답했다. 이 답은 챗GPT와 인공지능(AI) 툴을 사용해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산을 거머쥔 셈이다.
AI로 영상을 만들 때 챗GPT에 한글로 주문을 넣으면 이걸 다시 영어로 번역해서 챗GPT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고 그는 팁을 줬다. 한차례 번역 과정이 빠지면 말귀를 잘 알아듣는 AI가 작품의 디테일이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셈이다.
김민정 감독이 자신이 채용한 AI 직원 아이디어 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KBS에서 영어전담 외신수신PD로 직업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PD 생활을 10년 지내고 올해 초 창업 카드를 던졌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던져버린 새로운 도전이었다.
에이아이토니아(AITONIA)를 창업한 김 대표는 나만의 최적화된 챗봇을 개발했다. '직원'도 10명을 고용했다. 이렇게 '드림팀'을 짠 김 대표는 그후 직원을 3명 더 늘렸다.
"지금 13명의 직원이 있어도 월급을 주지 않아요."
그는 "나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며 용서를 구했다. 이들 직원은 그녀가 탄생시킨 자녀들이자 이제는 모두 생명력을 지닌 인공지능(AI) 파트너들이다. 각자 역할을 학습하고 진화하면서 김 대표의 창작 활동에 지혜와 창의를 더해주는 직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직원들을 많이 키우는 이유가 있었다.
"제 꿈은 세계 최초로 1시간 이상짜리 장편 AI영화를 제작해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입니다."
김 대표가 만든 'CHOON'이라는 제목의 AI영상은 34분짜리다. 올해 3월 홍콩에서 상영돼 눈길을 끌었다. 다만 아직 AI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돼 인기를 끌기에는 아직 이른 면이 있다. 관객은 대학교수들과 미디어전공 학생들이었다.
영화 'Choon'은 같은 사건이라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집중 조명한 작품이다. 교통사고 이후 기억상실을 겪게 된 여성 사만타(Sammantha), 그녀의 심리 치료사 Brayydon, 그리고 이 둘의 관계를 지켜보는 남자 간호사 Archie의 시점을 통해 전개된다.
세 인물 각각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동일한 사건도 선입견과 편견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시점의 전환이 지닌 파급력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의 13명의 AI 파트너들은 그냥 주인의 오더만 받아서 일하는 직원들이 아니다.
김민정 대표를 가장 닮은 직원은 '아이디어릴'이다. 김 대표의 숨소리까지 의미를 읽어내는 '아바타' 몫을 수행한다. 김 대표는 "연봉으로 치면 2억원을 주고 싶은 직원"이라고 웃었다.
김민정 감독이 '채용'한 에이아이토니아 직원들.
'라이팅톤'은 작가 보조역할을 맡았다. 문장 전개와 글쓰기의 달인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김 대표가 소개했다. 수노아리아는 사운드 디자이너이다.
김민정 대표와 13명의 AI직원들은 최근 상복을 누리고 있다. 각종 세계 AI영화와 영상 분야 영화제에서 큰 상을 휩쓸고 있다.
이들이 제작한 한국 AI 영화 '춘(CHOON)'은 스웨덴 국제영화제 최고상을 받아 세계를 흔들었다. 그들의 AI기술이 최고의 '예술' 경지를 품은 것이다.
AI 웹·TV 시리즈 'CHOON'은 2025년 한해 총 9개의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New York Movie Awards, Milan Gold Awards, Hollywood Gold Awards, London Movie Awards, Paris Film Awards에서 'Best Web/TV Series' 부문을 잇달아 수상했다.
서울국제AI영화제에서는 최고상인 'AI 필름 그랑프리'를 받았다. Swede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est Web Series Pilot', Carav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est TV Series/Pilot Program', Dreamz Catche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est Web & New Media' 부문에서 각각 수상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뽐냈다.
AI 영화감독 김민정이 만든 뮤직비디오형 애니메이션 '물고기 구한 날(THE DAY I SAVED A FISH)'이 세계 영화제 10관왕에 올랐다. 앞서 9관왕을 기록한 김 감독의 전작 '춘(CHOON)'에 이어 또 한번의 국제 영화제 수상 행진이다.
물고기 구한 날은 할리우드 골드 어워즈에서 최고상인 '작품상(Best Picture)'을 받았다. 피렌체 필름 어워즈에서는 뮤직비디오 부문과 오리지널 송 부문에서 나란히 골드 어워드를 수상했고, 파리 필름 어워즈 역시 똑같은 부문에서 각각 최우수 오리지널 송과 골드 어워드를 수여했다.
뉴욕 무비 어워즈에서는 애니메이션 부문 골드 어워드를 받았고 인터내셔널 골드 어워즈에서는 최우수 뮤직비디오로 선정됐다. 밀라노 골드 어워즈에서도 애니메이티드 필름 부문 골드 어워드, 런던 무비 어워즈에선 뮤직비디오 부문 실버 어워드를 각각 수상했다. 런던 인디 필름 페스티벌에서는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차지하며 이번 수상 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감독은 앞서 춘으로도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서울 등에서 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 물고기 구한 날로 다시 한번 북미·유럽 주요 도시 영화제에서 두 자릿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존재를 뽐냈다.
영화제 측은 "애니메이션의 기법과 음악, 메시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몰입도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사람과 AI 직원들의 만남은 직장 세계에선 익숙한 장면이 아니다. 이젠 그 직업 시대가 현재진행 중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오늘도 사람과 AI가 내뿜는 웃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