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김평화기자
새 정부가 한 해 2조원대 규모로 늘어난 임금체불액을 줄이기 위해 국가 대위권 강화를 예고했다. 국가가 사업주 대신 근로자에게 체불액을 주는 대지급금 규모를 확대하고, 사업주로부터 이를 회수하기 위해 전담기구를 설치할 계획이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까지 상당액의 재원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임금체불 실태 조사를 포함한 신속한 범부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 정부가 임기를 시작한 가운데 고용노동 분야 과제로 임금체불 개선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2조44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던 임금체불액이 올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지난 4월 누계 기준으로 올해 임금체불액은 7855억원을 기록했다. 1~2월 임금체불액이 4315억원을 기록한 상황에서 두 달 만에 82.04%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증가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해 단순 계산하면 올해 임금체불액은 2조3565억원이 될 수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15.24% 증가한 규모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부진한 상황에서 올해 어두운 경기 전망은 이 같은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 전망을 1.5%에서 1.0%로 내려 잡았다. 한국은행(0.8%)을 포함한 국내외 주요 기관의 경우 0%대 성장까지 내다본 상태다.
임금체불 상위 업종인 제조업과 건설업 등에서 일자리를 잃고 구직급여(실업급여)를 받는 근로자는 늘고 있다. 지난 4월 구직급여 지급자(70만3000명)와 지급액(1조1571억원)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인 2021년 4월 이후 가장 많았다.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기에 임금체불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 정부는 '근로감독 강화로 체불임금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방침이다. 근로감독 인력을 늘리고 지방 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등 근로감독 한계를 개선하고, 임금채권소멸시효(3년) 내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을 포함한 체불임금을 대지급금으로 전액 지불해 기존 대비 대지급금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대지급금 회수를 위해 전담 기구를 설립하고 임금체불 사업주의 처벌 양형 기준을 강화한다. 임금체불 원·하청 연대 책임 부여와 대지급금 회수 시 국세 체납분 절차에 따른 신속 처리 등도 예고했다. 체불임금을 늘리는 주요 원인인 퇴직금 미지급 사례를 해결하기 위해 전 사업장의 퇴직연금 의무 가입도 추진한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근로감독 인력 확충과 수사 권한 강화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던 만큼 이번 정책 추진이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경기 불황과 함께 체불임금 증가세가 두드러진 상황이기에 개선 과정에서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범부처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종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공인노무사)은 "임금체불은 사회적 재난"이라며 "그런데도 정확한 실태조사 한 번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사정 3자가 협력해 실태 조사부터 제대로 해서 임금체불의 구조적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임금체불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원 마련도 난제다. 지난해 지급한 대지급금은 7242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올해 임금체불이 작년보다 늘어나면 대지급금도 늘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새 정부가 대지급금 지급을 확대하겠다고 한 만큼 상당액이 필요하지만 올해 대지급금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포함해 6802억원이다. 작년에는 기존 예산만으로 지급이 어려워 추가적인 재원을 투입해야만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지급금은 체불 사업주를 지원해 임금체불 근로자 피해를 복구하는 방식이다 보니 체불 사업주가 변제해야 할 일종의 채무와 같다"며 "회수율(30%대)이 낮아 새 정부 들어 전담기구 설치 논의가 나왔고, 어떻게 설치할지는 검토를 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국세 체납 절차에 따라 처리하게 되면 (회수)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어 체불 사업주 변제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수율 제고 방안을 포함해 어떻게 재원을 더 확보할 수 있을지 진중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퇴직금 체불이 주로 소규모 업체에서 발생하는 가운데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퇴직연금 전환을 강제하기 힘든 점도 살펴볼 부분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월간 노동리뷰 4월호에서 길현종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급여 제도 체불을 경험하는 많은 근로자가 소규모 기업에서 상대적으로 소액의 체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