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제2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시간문제다

수주 경쟁에 기업 눈치보는 '을' 회계법인
감사보수 스스로 낮추며 품질 떨어뜨려
회계업계 신뢰, 스스로 지켜야 할 자산

회계사들이 기업에 감사를 나가면 이들의 밥값은 누가 낼까. 일단 회계사들이 결제하고 나중에 기업에 청구해 돌려받는다. 회계감사는 기업 요청에 의해 이뤄지는 서비스고, 식비는 서비스 수행을 위한 필수 실비(實費)라서다. 숙박비, 출장비 등도 동일하다.

그런데 회계사들이 실비를 청구할 때 기업들 눈치를 본다고 한다. 당장 내년에 감사를 또 하려면 기업에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 회계 담당자 입에서 '다음엔 ○○회계법인과 계약 안 한다'는 뒷말이 안 나오도록 조심 또 조심한다. 심지어는 감사에 필요한 자료를 달라는 말조차 쉽게 못 꺼낸다고 한다. 기업 가계부 '감시자'라지만 실제로는 을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이런 상하관계는 2012~2014년 매출 부풀리기, 자본 과대 계상 등으로 불거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 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며 완화되는 듯했다. 당시 감사인의 독립성 훼손과 저가수주 관행이 사태 원인으로 지목됐고 기업이 6년간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하면 다음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감사인이 사실상 금융당국의 대리인으로서 감사를 강화하며 감사보수도 위상도 한층 올라갔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회계업계는 자꾸만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전으로 시계를 돌린다.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알아서' 가격을 낮춰주고 있다. 지난해(2025사업연도) 빅4(삼일·삼정·안진·한영) 회계법인이 자유수임 상장사로부터 받은 평균 감사보수는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감사 인력과 시간은 줄인다.

회계업계 가격 경쟁은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허용될 수 있다. 회계법인은 민간 기업이기 이전에 자본시장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보증하는 공적 역할을 한다. 감사품질이 떨어지면 재무제표를 믿고 증시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손실, 나아가 자본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한 것은 모든 감사를 지정만큼 엄격하게 수행하라는 취지이지 지정일 때만 잘하라는 것이 아니다. 신뢰는 회계업계 스스로 지켜야 할 자산이다.

제도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저가 수주는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과 일감을 조금이라도 더 따내려는 회계법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에 가만히 두면 고칠 수 없다. 감사보수와 시간이 이전보다 줄었다면 그 이유를 적도록 해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감사인 지정 기준 완화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당국의 손길이 느슨해지는 순간 '제2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시간문제다.

증권자본시장부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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