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영화 '하이파이브'는 정체불명의 남성으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아 초능력이 생긴 사람들의 이야기다. 발휘하는 힘은 제각각 다르다. 심장병으로 학업과 친구를 모두 놓친 중학생 완서(이재인)는 괴력과 민첩성을 얻었다. 백수인 지성(안재홍)은 어마어마한 폐활량, 비슷한 처지의 기동(유아인)은 전자기파 조종력, 근로 감독관 약선(김희원)은 강한 치유력을 가졌다.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 컷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타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미숙한 경험과 책임 회피로 출발은 순조롭지 않다. 일부는 책임을 요구받으면서 취약성에 사로잡힌다. 애써 회피하거나 고립돼 자폐화된다.
강형철 감독은 분위기 전환의 발판으로 연대를 가리킨다. 배역들이 스스로에게만 해당한다고 여겼던 불안감과 열패감이 타인, 나아가 우리 사회와 복잡하게 연결돼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서로 간 의존성과 이를 조율하는 에토스를 곁들여 개개인의 부담을 낮추고 불필요한 책임을 지운다.
한편으로는 야기된 불안정성을 집단적이면서 체계화한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때 불안정성의 반대는 안정이 아니다. 살 만한 삶을 위한 상호의존성이 작동하는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향한 투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맞서는 상대는 같은 공여자에게서 췌장을 이식받은 영춘(신구·박진영)이다. 타인의 젊음을 빼앗는 능력을 거리낌 없이 남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 다른 초능력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완서 일행을 하나둘 납치한다.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 컷
사이비 교주인 그는 타인의 재산과 행복을 숱하게 착취해왔다. 사회의 취약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권력을 키워온 독재자다. 스스로 대표성을 부여해 영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표식으로 수탈을 정당화한다. 초능력을 얻어 회춘하면서 영향력을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타인의 취약성은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만 연결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개방성으로까지 발전할 만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반응성도 취약성의 기능이자 효과임이 드러난다.
강 감독은 이를 남다른 촉각, 시각, 후각, 청각과 운동성으로 상징화한다. 완서 일행이 감각이 규제된 신도들과 달리 상황을 직시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영춘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초인으로 거듭났으나 여전히 취약성이 남아있다.
취약성은 경험에서 비롯한 잠재적인 혹은 명시적인 특질이다. 타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세계에서도 의존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 전략보다 단결된 형태로 용기를 발휘해야 저항에 가닿을 수 있다. 강 감독이 완서 일행을 시종일관 오합지졸로 그리면서도 말미에 상호의존성을 부각해 역전을 유도하는 이유다.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 컷
엄밀히 말하면 상호의존성은 사회적 조화나 아름다운 공존의 상태로 보기 어렵다. 서로가 처음 보는 사이일 수도, 뜻하지 않은 관계일 수도 있다. 타인과 연대하면서 선택하지 않은 어떤 차원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힘이 분산되거나 약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리나 광장은 물론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꽤 인상적이고 효과적인 연대의 고리를 생산해낸다. 우리의 의지로서 진입하는 의도적인 계약에서만큼 예측하지 못한 조건들에서도 연대의 힘이 충분히 빛날 수 있는 셈이다. 오합지졸로 보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