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리기자
오랜 전쟁으로 식량난이 심각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굶주린 주민들이 구호 트럭을 멈춰 세우고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주민들이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이 승인한 미국 지원 단체인 가자 인도주의 재단이 지원한 식량과 구호물품 상자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5월3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미국 CNN 방송 등 외신들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구호 트럭 약 77대가 가자지구 중남부 지역에서 배급소로 가는 도중 굶주린 민간인들에게 구호 식량을 빼앗겼다고 보도했다. WFP 측은 "모든 트럭이 가는 길에 멈춰 세워졌으며 주로 가족들을 먹이려는 굶주린 이들에 의해 식량을 빼앗겼다"고 설명했다. 아비르 에테파 WFP 대변인은 "구호 트럭이 창고 등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군중이 몰려들 경우에는 보통 사람들이 구호품을 가져가도록 둔다"며 "이날 구호 트럭을 약탈한 이들은 주로 음식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배급소까지 가는 것을 기다릴 수 없는 절박한 이들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가자 남부 칸유니스에서 촬영된 한 영상에는 사람들이 밀가루 포대를 나르는 모습이 담겼으며, 가자 중부 넷자림 지역에서는 밀가루를 가져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뒤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약 80일간 이어진 강도 높은 봉쇄를 풀고 지난달 19일부터 가자지구에 구호물자 반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유엔(UN) 등 국제기구들은 봉쇄 해제 이후로도 식량 등 구호물자가 충분히 반입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구호 트럭 반입을 허가한 이후에도 지난 2주간 약 900대의 트럭밖에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이는 굶주린 가자 주민들이 필요한 양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도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가 지구상에서 가장 굶주린 곳이라면서 200만명이 넘는 가자 인구 전체가 사실상 기아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주도하는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 개소한 배급소에 굶주린 주민 수만 명이 몰려들면서 1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치는 대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극심한 굶주림이 이어지자 주민들이 구호 트럭이나 식량 배급소를 약탈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고, 이 때문에 국제 사회가 구호 활동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