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기자
"부모가 자녀 교육에 힘쓰는 게 왜 죄인가요?"
'7세 고시'라 불릴 만큼 치열해진 유아 사교육 현실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한 대학 교수가 물었다. 대한민국처럼 좁은 땅에 제한된 자원을 가진 치열한 경쟁의 나라에서 불가피한 일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그 교수는 고려 시대부터 교육 열풍이 있었던 걸 감안할 때, 지금의 사교육 현실을 '극성맞은 부모 탓'만으로 돌리는 건 본질을 비껴간 얘기라고 말했다.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23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뒤 학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교수는 10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사교육' 얘기도 들려줬다. 970년 전인 고려 문종 9년, 관직에서 물러난 '해동공자' 최충이 개경 자하동에 '구재학당'을 세웠다. 중국에서도 인정받은 천재의 시험 비법을 배우기 위해 고려 방방곡곡의 수재들이 몰려들어 입학하려고 줄을 서고, 족집게 과외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 서울 강남 대치동, 목동 등 학원가의 '초등 의대반' 입시 테스트에 줄 서는 풍경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공부해야 잘 산다'는 건 어쩌면 좁은 땅, 제한된 자원,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비결로 우리나라 사람들 DNA에 각인된 것일 수 있다.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 '이제는 이 부조리를 없애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분들과 고민을 나누고자, 기자는 '한국의 교육, 길을 잃다' 기획시리즈 보도를 하고 있다. 주변 지인들이 기사를 보고 "움찔했다. 내 얘기 같아서…" "우리 애도 학원만 대여섯개 다니는데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라고 말씀을 주실 때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맞아 내 얘기야"라고 맞장구만 치기엔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너무도 답답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금융업계의 어느 부장님은 대출까지 받아 가며 두 아들의 학원비를 감당해내는 과정에서 '콩나물에 물 주듯' 돈을 쏟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쑥쑥 자라나는 콩나물처럼, 아이들이 학원에서 얻어오는 것으로 커나가길 기대하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대학에 갔다고 한다. 실망하는 그에서 아내는 "그렇게라도 학원에 다녔으니 붙은 거야"라고 핀잔을 주었다. 결국 그는 "재수 안 한 게 다행" "재수 안 했으니까 효자"라고 스스로 위안했다고 한다.
이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한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대학에 가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학원 입학 테스트 고시'에 매달리는 일곱살 아이들에게 '놀이'의 소중함을 되돌려 줄 방법은 없는가. 어른들은, 또 부모들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해 30조원이 넘는다는 어마어마한 사교육비 지출을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위한 소비에,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래의 지출에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제 며칠 후면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새 리더십이 세워진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입시 지옥 해소를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100년간 끊임없이 계획하고, 실천하고, 또 반성하면서 바른길로 가도록 이끌어야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올해가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맞아 내 얘기야"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도록, '콩나물에 물 주듯' 사교육 학원에 돈을 쏟아붓는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