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머리의 아씨야' 광주에서 되살아난 고려인 시

강제이주 시대에 피어난 문학
고려인마을, 한글문학 기획전

“밭머리에 서서 팔 소매 걷어 올리는 사랑에 너는 무엇을 선보이려나.”

강제 이주의 땅, 중앙아시아 벌판에서 고려인들의 그리움과 삶을 노래한 강태수 시인의 시가 80여 년 만에 관람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광주고려인마을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지난 1일부터 고려인문화관에서 개최 중인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려인마을 제공

19일 광주고려인마을에 따르면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달 1일부터 고려인문화관에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고려인 문학 속에 담긴 망명과 억압, 상처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로, 강제 이주 시대를 살다간 시인과 작가들의 삶을 조명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포석 조명희 선생의 제자였던 강태수 시인의 삶과 작품이 눈길을 끈다. 강 시인은 1937년 스탈린 치하에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후, 고려사범대 조선어문학과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시를 썼다.

하지만 대표작 ‘밭 갈던 아씨야’를 발표한 뒤 연해주를 동경하는 표현이 문제가 돼 체포됐다. 그는 이후 21년간 시베리아 유형과 거주지 제한 조치를 겪어야 했다. 고려인 사회는 이후 ‘조국’이나 ‘연해주’라는 말조차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

이번 전시는 강 시인을 비롯해 고려인 문학을 지켜낸 여러 시인과 작가들의 흔적을 소개한다. 스탈린 정권의 감시와 검열 속에서도 문학적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의 삶과 작품을 한글로 만날 수 있다.

광주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고려인 문학은 단순한 예술이 아닌, 고난 속에서도 지켜낸 민족의 언어다”며 “이번 기획전을 통해 잊힌 고려인들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호남팀 호남취재본부 송보현 기자 w3t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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