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보단 점령 당하는게 낫다'…청년층 반대하는 유럽 징병제 부활[AK라디오]

러 방어위해 징병제 부활 필수
병역거부 극심…안보의식 희박
징병제 유지국가들도 고심 깊어

독일의 프리드리 메르츠 차기 총리가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유럽 전역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반 이후 순차적으로 징병제를 폐지해왔으며, 현재는 9개국만이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 분위기로 접어드는 가운데 미국이 유럽 방위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자체 방위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의 전력 차이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의 집계에 따르면, 핵무기 보유량에서 러시아는 5889개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5244개로 그 뒤를 잇고, 중국(410개), 프랑스(290개), 영국(225개) 등의 순이다. 만약 미국의 핵우산이 유럽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면 프랑스와 영국의 핵무기(515개)만으로 러시아의 막강한 핵전력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래식 전력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유럽 전체 군대를 합쳐도 약 147만명으로, 러시아의 상비군 150만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유럽의 군대는 수십 개 국가의 병력을 단순히 합친 것에 불과해 통합 작전 수행이 어렵다는 점이 핵심 문제다. 주요 유럽 군사 강국의 개별 병력을 살펴보면, 프랑스 20만명, 영국 18만명, 독일 14만~16만명으로, 이들 3개국 합계는 한국군의 전체 병력과 유사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다른 유럽 국가를 침공할 경우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 탈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유사시 미국의 지원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어, 징병제 부활을 통한 병력 증강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징병제 부활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강한 거부감이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독일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독일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독일의 27세 파드캐스터이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올레 니모앤은 "나는 왜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는가"라는 책을 출간해 유럽 전역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외국에 점령당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을 담아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밝혀 유럽 청년들의 안보 의식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독일에서는 2023년 입대한 남녀 군인 1만8000여명 중 25%가 입대 후 6개월 이내에 군을 떠났으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 수는 약 3000명으로 2021년 대비 15배나 증가했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호전적이었던 유럽이 지금은 전쟁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진 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유약해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도 유럽에서만 병력을 모집하는 것이 어려워 많아야 1만5000~2만명 규모의 파병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마저도 상당 부분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의 용병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럽 방위의 또 다른 문제는 유럽 국가들 간의 내부 갈등이다. 특히 유럽 안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튀르키예는 유럽 안보에서 더 큰 역할을 맡는 대신 EU 가입을 요구하고 있어 서유럽과 동유럽 국가들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약 42만명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어 프랑스와 독일의 전력을 합친 수준이다.

그러나 그리스를 비롯한 발칸반도 국가들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의 역사적 원한으로 튀르키예의 EU 가입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튀르키예가 가입할 경우 EU를 탈퇴하겠다는 극단적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또한 에르도안 정부의 친러 성향과,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휴전 중재에 나서온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의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경우, 실제 러시아와 충돌 시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의 모습. AFP·연합뉴스

이러한 안보 불안감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평화주의 국가들까지도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에 징병제를 운영 중인 국가들은 군 복무 기간 연장이나 여성 징병제 도입 등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기조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안보 환경에 처해 있어 유럽의 징병제 논의를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단순히 병력 숫자를 채우기 위한 복무 기간 연장이나 여성 징병제 도입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전 국경에 배치된 여성 군인들이 위협 징후를 보고했음에도 군부가 이를 무시해 사태가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단순한 병력 증강보다 효율적인 통합과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안보 불안 해소를 위한 다양한 해결책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되며, 한국 정부와 정치권도 세계적인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며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취재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영상팀 이경도 기자 lgd0120@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