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電力이 국력]⑧전력망법 통과에도 하남-한전 갈등 '현재진행형'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종점'
하남 동서울변전소 착공 지연
발전소 지어도 수도권에 전기 못보내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사상 최대 지연
호남 지역 재생에너지 발전에도 타격
전력망 확충법 통과했지만
시행령 개정 등 과제도 남아

지난달 28일 경기 하남 감일지구. 길거리 곳곳에는 ‘동서울 변전소 증설 결사반대’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이현재 하남시장을 비난하는 상대 당의 플래카드도 보였다. 변전소 증설을 둘러싼 경기도 하남시와 한국전력간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동서울 변전소 건축 허가를 불허한 하남시를 상대로 한국전력이 낸 행정소송에서 한전 손을 들어줬다. 한전은 이달중 동서울 변전소 옥내화 및 초고압직류송전(HVDC) 증설을 위한 착공식을 개최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 하남시 관계자는 14일 "현재 실시계획변경인가 주민 공람을 진행하고 있으나 건축 허가 및 착공 시기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행정적인 절차와 별개로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해서다. 최근 한국 전력은 주민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보상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전과 하남시는 2023년 10월 업무 협약을 맺고 동서울 변전소 증설을 추진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하남시는 주민 건강권을 이유로 변전소 건축 허가를 돌연 취소했다. 인근 하남시와 감일지구 주민들도 전자파 발생이 우려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전은 하남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한전의 손을 들어 건설 허가를 내주라는 결정을 내렸다. 한전은 전자파의 경우 가장 가까운 아파트에서 측정해도 기준치를 한참 밑돈다고 설명했다. 또 동서울변전소를 주민 친화형 변전소로 건설하고 직원 120여 명이 근무함으로써 전자파가 유해하지 않음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하남 감일지구 아파트 단지내에 동서울 변전소 증설을 반대하고 이현재 하남 시장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강희종 기자

하남 감일지구 아파트 단지내에 동서울 변전소 증설을 반대하고 이현재 하남 시장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강희종 기자

수도권으로 전기 공급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선 변전소 증설은 필수다. 특히 하남 주민들이 반대하는 동서울변전소는 현재 건설중인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의 종점 역할을 한다. 이 송전선로는 동해안에 집중된 원전과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기 위해 추진됐다.

그동안 동해시 북평석탄화력발전소, 삼척시 삼척블루파워발전소는 전기를 보낼 방법이 마땅치 않아 가동을 멈추고 있었다. 동해안 지역 발전 용량은 17.8GW인데 비해 송전용량은 14.5GW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산업단지가 밀집한 수도권은 전기가 부족해 송전선로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는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1단계 사업인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는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총 230㎞를 철탑으로 연결한다. 2단계 동해안~동서울 송전선로는 경기 양평에서 하남 동서울 변전소까지 50㎞ 구간을 잇는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구축과 변전소 증설이 완료되면 동해안에서 멈춰 있는 화력발전소를 제대로 가동할 수 있어 수도권 전력난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지자체 반대로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구축이 하염없이 지체되면서 당초 목표로 했던 2019년 12월에서 66개월 늦춰졌다.

하남 동서울 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계획. 한국전력 제공

하남과 한전의 변전소 갈등은 전력문제가 지자체를 둘러싼 님비현상(지역이기주의)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평가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단지 조성,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는 주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반면, 전기 생산은 주로 전남, 경남, 충남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발전과 수요지 거리가 멀수록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전력 공급을 시작한 북당진~신탕정을 잇는 345㎸ 송전선로는 무려 준공 시기가 150개월 늦어진 경우다. 이 사업은 2003년 계획 수립 당시 2012년 6월 준공을 목표했지만 주민 반발 등으로 2014년에야 공사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준공 시기가 6차례 밀리며 국내 송배전망 건설 사상 최장 지연 기록을 세웠다.

345㎸ 당진화력~신송산 송전선로는 90개월, 345㎸ 신당진~북당진 송전선로는 66개월 늦게 준공될 것으로 보인다.

전력망 구축 지연은 재생에너지 발전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호남 지역은 태양광 설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나 송전망 용량이 부족해 빈번하게 출력제어가 발생하고 있다. 한전은 호남 지역의 전력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성에 345㎸ 규모 송전선로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집단 민원, 지자체의 인허가 비협조로 당초 예정보다 77개월 늦어지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갔다. 송전망이 포화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재생에너지 전력 수요보다 생산이 많은 전국 205곳 변전소를 계통관리 변전소로 지정했다. 이중 호남권 변전소가 164곳에 달했다. 계통관리 변전소에 대해서는 지난해 9월부터 2031년까지 전력 계통 접속을 제한했다. 사실상 태양광 신규 허가를 중단한 것이다.

다행히 지난 2월 말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송전선로 구축을 둘러싼 갈등은 다소 잦아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력망확충법은 그동안 개별 사업자인 한전이 추진하던 핵심 전력망 구축 사업을 국가 주도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은 정부가 5년마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기간전력망확충위원회를 설립해 갈등을 조정, 중재할 수 있도록 했다. 전력망 구축을 위한 실시계획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60일 이내에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해 사업자의 부담을 줄였다.

또 국가기간 전력망 개발 사업에 대해 실시계획의 승인을 받으면 다른 법률에 있는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의제함으로써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일원화했다. 사업 시행자가 주택 및 토지소유자 등 주변 지역주민에게 특별 보상을 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마련해 주민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만 시행령 제정 등 남은 숙제도 만만치 않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전력망확충법안 자체에는 필요한 내용이 대부분 담겼지만 시행령, 시행규칙 등 후속 조치를 제대로 마무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전 측은 "특별법 통과 후 한전은 6개월 유예기간에 내부 이행체계를 조속히 확립해 특별법이 원활히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산업IT부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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