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기자
25일 저녁 빨간 넥타이를 매고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발언대에 선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 진술은 대국민 연설문 같았다. 윤 대통령은 A4용지 77장 분량의 원고를 직접 썼다고 한다.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67분간 윤 대통령의 목소리는 중간중간 갈라지긴 했지만 흐트러짐 없이 최후 진술을 이어나갔다.
윤 대통령의 최후 진술은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계엄포고령 1호, 국회 활동 방해, 정치인 등 체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병력 투입 등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고, '거대 야당'의 책임을 부각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야당'이 48회, '간첩'이 25회, '북한'이 15회였다. 윤 대통령의 상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야당을 공격하는 데 쓰인 단어들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쳐 드린 점을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2시간짜리 계엄이었다"는 점을 강조했고, "비상계엄이 발동된 상황은 거대 야당의 줄 탄핵·입법 폭주·예산 폭거로 정부가 마비되는 국가 비상사태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거대 야당의 폭주가 대한민국 존립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더욱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개헌' 관련인 듯하다. 개헌이라는 단어를 6차례 언급했는데, 이는 자신의 '복귀 계획'과 연결됐다. 윤 대통령은 "헌재의 판단에 따라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면서 "잔여 임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의 적막을 깨고 온 국민을 '비상계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윤 대통령이다. 그 뒤로 84일이 흘렀지만, 이 나라는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리더십은 진공 상태나 다름없고, 국가 신인도와 경제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폭도'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전체 국민 앞에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이날 최후 진술에서도 대통령다운 책임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 아쉬운 것은 최후 진술 그 어디에도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2년 9개월 전 '헌법 준수' '국가 보위'를 선서했던 그 대통령은 어디로 갔나.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2025.2.25. 헌법재판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