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프린트되는 인간은 사회보장 밖의 노동자들

봉준호 감독 신작 '미키 17'
부차적 권리로 취급받는 노동기본권 다뤄
개선의 열쇠로 외계 생명체 공존 가리켜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은 먼 미래가 배경이다. 주인공 미키는 역사 연구가지만, 이 시대에선 역사를 경외시한다. 그는 미드가르드라는 행성에 살다가 스포츠 도박으로 돈을 날려 복제인간 프로젝트 '익스펜더블(Expendable·소모품)'에 참여한다.

영화 '미키 17' 스틸 컷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키 17'은 2054년으로 시간을 앞당겼다.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익스펜더블에 지원하는 계기도 바꿨다.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실패해 막대한 빚을 지면서 도망치듯 지구를 떠나기로 한다. 영토를 개척하는 탐사선에 오르려면 특수한 기술이나 재주가 있어야 한다. 별다른 능력이 없는 미키는 심사가 없다시피 한 익스펜더블에 자원한다.

익스펜더블은 가장 위험한 임무에 투입돼 죽음을 반복하는 업무다. 예컨대 방사능에 얼마나 노출돼야 죽는지, 새로운 행성의 대기에 바이러스가 있는지 등을 직접 몸으로 확인한다. 이를 토대로 탐사선의 과학자들은 예방책을 마련하고, 미키는 기억과 생체 데이터가 업로드된 새로운 몸으로 프린트돼 다시 참혹한 현장에 투입된다.

미키는 "당신이 죽을 때마다 우린 새로운 걸 배우고, 인류는 나아갑니다" 같은 그럴싸한 말로 봉사와 희생을 강요당한다. 우월한 가치를 위해서라면 여타의 가치들은 무너져도 괜찮다는 논리는 낯설지 않다.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장 밖에 놓인 노동자가 750만 명에 달하는 한국에서 쉽게 발견된다. 상대적 박탈감이 일상화될 만큼 시민권이 보장돼 있지 않다. 사유재산권이 우위인 현실에서 노동기본권도 부차적 권리로 취급받는다. 법의 예외나 권리의 부재로 제도적 차별이 용인된다.

영화 '미키 17' 스틸 컷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변하지 않는 문제다. 오히려 기존 산업재해 영역이 더 다양한 양태로 확장하고 있다. 동일 기업에서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될 정도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저서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간 우리 사회는 기업이 노동자보다 강자 입장이고, 사전 예방 및 관리 비용을 직접 지불하기보다 사후적으로 산재가 발생해도 법정에서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하도록 방치했다."

봉준호 감독이 원작의 인간 프린팅에 주목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화력발전소, 스크린도어, 제빵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돌아가신 사건이 최근 몇 년간 연이어 있었다"며 "영화에선 미키 혼자서 그걸 하고 있고, 현실에선 A군 다음에 B군, B군 다음에 C양이 계속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오히려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SF 장르를 통해 우리 현재 모습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화에서 노동 환경을 바꿀 열쇠로 '크리퍼'들의 공존을 가리킨다.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지만, 얼어 죽을 뻔한 미키를 구해주고 뛰어난 지성까지 갖춘 니플하임 행성의 토착 생명체다. 미키가 죽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인간과 달리 새끼를 구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한다. 멀리서도 울음소리를 인지하고 수천 마리가 달려온다.

영화 '미키 17' 스틸 컷

노동 불평등 해결의 출발점도 목소리를 박탈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이다. 사회가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고, 비로소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노동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미키17'은 오는 28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 북미에서는 3월 7일 공개한다.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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