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종기자
올해 정부가 처음으로 실시한 청정수소발전시장입찰(CHPS)에서 유일하게 남부발전만 낙찰자로 선정되면서 국내 청정수소 생태계 기반 조성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방식대로라면 국내에서 청정수소를 생산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청정수소를 생산하려던 프로젝트들은 첫 삽도 뜨기도 전에 불확실성에 놓이게 됐다.
충남 보령에 국내 첫 블루 수소 플랜트 건설을 계획하고 있던 SK이노베이션 E&S는 이번 청정수소발전입찰 선정에 실패하면서 건설 계획을 유보했다. 회사 관계자는 26일 "블루수소 플랜트 건설은 청정수소발전입찰에 선정되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언제 착공할지 기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E&S 이외에 포스코인터내셔널, GS칼텍스 등 국내에서 추진하던 블루 수소 생산 프로젝트 역시 불투명하게 됐다. 결국 국내 첫 청정수소발전은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연료(암모니아)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올해 세계 최초로 청정수소발전 입찰을 실시했다. 청정수소 인증을 받은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사업자를 선정해 2028년부터 15년 장기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을 청정수소 인증기관으로 지정했다.
청정수소는 수소 1㎏을 생산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4㎏ 이하인 수소를 일컫는다. 탄소 배출량에 따라 1~4등급이 주어진다. 그린 수소나 블루 수소가 여기에 해당한다. 블루 수소는 액화천연가스(LNG)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이용해 제거한 수소를 말한다.
올해 청정수소발전시장 입찰에는 남동발전, 중부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SK이노베이션 E&S 등 5개 사가 참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남부발전(750GWh) 한 곳만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 당초 올해 입찰에서 청정수소발전을 통해 총 6500GWh 규모의 전기를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11.5%만 채우게 됐다.
수소 업계에선 미흡한 입찰 설계와 수소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 부족을 흥행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도 올해에 준해 청정수소발전 입찰을 실시할 계획이지만 올해 방식대로라면 동일한 결과가 반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입찰은 가격 60점과 비가격 40점을 합산해 종합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비가격 요소로는 청정 수소 등급별 평가 등 온실가스감축 기여도(45점), 국내 산업·경제 기여도(15점), 연료 도입 안정성 등 사업 신뢰도(22점), 주민 수용성 및 사업진척도(13점), 계통 수용성(5점)을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입찰에서는 가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업계에서는 최저 입찰가격이 460~470원/kWh(킬로와트시)에서 정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입찰 참여 기업들 사이에선 처음으로 실시하는 청정수소입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사에 환율 변동 부담을 지운 점, 이용률을 보장하지 않은 점에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번 입찰을 주관한 전력거래소는 달러화가 아닌 원화로 계약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환율 리스크를 떠안은 발전사들은 더 비싼 가격에 연료를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낙찰 사업자와 계약 시 이용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용률을 보장받지 못하면 계약 기간인 15년간 수소 수요량을 산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료 공급 가격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화, GS, 두산, 포스코 등 다수 민간 기업들도 처음에는 청정수소발전시장에 관심을 가졌으나 입찰 조건 공개 이후엔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 E&S은 당초 보령 LNG 터미널 인근에 세계 최대 규모의 블루 수소 플랜트를 구축해 이곳에서 생산한 수소를 발전용 연료로 사용한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입찰 참여 기업 중 유일하게 국내 청정수소 생산 계획을 밝힌 사례였다. 하지만 가격의 벽에 부딪혀 사업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수소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블루 수소를 생산하는 비용이 해외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비쌀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지원책 없이는 가격 경쟁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입찰에서는 비가격 지표에 산업경제 기여도에 15점을 배점했으나 결과에는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청정수소 생산을 위해선 다양한 제도·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안지영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청정 수소 생산 기반은 기술 선도국에 비해 기술적 성숙도와 가격 경쟁력이 낮고 정책·제도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와 산업계의 적극적인 협력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사업자로 선정된 남부발전은 기존 석탄화력발전소인 삼척그린파워 1호기에 청정 암모니아를 20% 혼합해 연소하는 혼소발전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삼성물산을 통해 중동에서 생산한 청정 암모니아를 수입해 연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남부발전은 올해 4월 삼성물산과 삼척그린파워 인근에 3만t급 암모니아 저장탱크 1호기와 하역·운송 설비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정부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총사업비 400억원중 240억원을 정부에서 보조받는다. 남부발전 관계자는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은 2028년부터 상업 운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 청정수소발전이 실시되지만 그 부담은 결국 한전과 국민들이 떠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정수소발전입찰은 RPS(재생에너지 의무 할당제) 장기공급계약 구조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계약은 의무 공급 사업자인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 발전사 3자 간에 이뤄진다.
발전사에 대한 정산은 전체 발전량에 계통한계가격(SMP)을 곱해 지급되며 여기에 청정수소발전에 따른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는 차액 계약(CFD) 방식이다. 그 차액은 한전이 부담하게 된다.
만약 이번에 낙찰된 청정수소발전의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460원/kWh, SMP가 160원/kWh(통상 SMP는 최종 소비자가 내는 전기요금으로 충당)이라면 차액인 300원은 한전이 부담한다는 얘기다.
올해 정부가 계획했던 6500GWh가 모두 낙찰됐다면 1조9500억원(300원 × 6500GWh)을 한전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15년간 장기 공급 계약이라면 이 규모는 29조250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는 결국 국민의 요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전은 2021년부터 신재생에너지 구입에 드는 비용을 기후환경요금에 반영하고 있다.
이 규모는 향후 더욱 불어난다. 정부는 앞으로 청정수소 입찰 시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2030년에는 연간 13TWh(테라와트시, 1TWh=1000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수소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입찰방식으로는 한전의 재무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지속 가능한 청정수소 발전 시장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