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에 대해 생각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사람의 목숨이 파리나 모기처럼 함부로 짓이겨지는 현장이 생중계되고 있다. 얼마 전 이제 스물이 되었을까 싶은 북한 병사의 앳된 얼굴이 뉴스에 등장했다. 눈 덮인 벌판에 선 그는 겁에 질렸다기보다는 최후를 예감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이었다. 그의 예감이 맞았다. 곧 죽음의 신 드론이 그를 덮쳤다. 영화 장면이 아니다. 요즘 매일같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벌어지는 살풍경이다.
러시아에 북한군이 파병됐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전체 파병 규모가 1만명이 넘고 연일 최전선에 총알받이로 투입되는 상황이니, 이러다간 수천 명의 북한군 목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조국도 아닌 이역만리에서 사람도 아닌 드론에 죽다니. 이토록 허무한 운명이 또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연히 적국의 군인이 죽는 건데 우리한테는 좋은 거 아닌가? 이런 분들은 굳이 아까운 시간에 이 글을 끝까지 읽을 필요 없으니 멈춰주시길.
이제 드론은 현대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기가 됐다. 칼보다는 총, 총보다는 대포로 사람을 죽일 때 죄책감이 적다고 한다. 살상행위의 죄책감은 피해자와의 거리에 반비례하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산 넘고 바다 건너 평화로운 사무실에서 게임처럼 모니터를 보며 상대를 공격하는 드론은 죄책감을 가장 덜 느끼는 방식으로 살상을 저지르는 무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2016년에 전투용 드론과 죄의식에 관한 영화가 나왔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를 시사컬처에서 선정한 올해의 외국영화로 선정한다. 선정 조건은 올해 개봉이 아니고 얼마나 잘 올해를 돌아볼 수 있느냐다.
시사컬처 선정 올해의 한국 영화는 ‘곡성’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역시 2016년 개봉됐다. 무당들이 나타나 평화롭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내용인데, 난데없이 온갖 무속인들이 등장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2024년의 대한민국과 겹쳐 보인다. 천공 선생은 뭐고 건진 법사는 또 누군가? 그 외에도 영부인 곁에 여러 무속인이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스마트폰을 들고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 시대에 무속인들이 이렇게 활개 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돈 받고 여론조사를 조작해 주고 근거 없는 예언과 치사한 협박을 일삼는 명태균도 정치 무당 아닌가?
영화 ‘곡성’과 우리 현실과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의 태도다. 영화 속 경찰 종구는 악의 무리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끝까지 온 힘을 다한다. 그는 가련한 피해자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버티기는커녕 온갖 사이비들에 앞장서서 헌정질서를 파괴했다. 국민 담화까지 열어 극우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를 설파하고, 직접 모리배들과 통화하며 국정을 논의하고, 군부와 손을 잡고 직접 비상계엄을 설계했다.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피해자가 될 수 없다. 그가 유일하게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배우자 김건희와의 관계 정도. 적어도 둘 사이에서만큼은 그가 피해 본 일이 더 많은 듯하나,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윤석열은 2022년 3월에 대통령이 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그즈음 시작됐다. 2024년은 윤석열 정권과 러·우 전쟁 모두 최악의 단계로 접어든 해였다. 과연 내년에는 양쪽 모두 끝날 수 있을까? 무의미한 죽음도, 광란의 굿판도 멈출 수 있을까? 안팎으로 어지러웠던 올 한해 독자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재익 SBS 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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