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취재본부 송보현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 비상계엄 선포 상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스란히 기록된 가운데 이를 지켜보며 지난 밤을 꼬박 새운 시민들은 현실판 ‘서울의 봄’을 지켜봤다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1979년 12월 12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 극 중 전두광(전두환)은 군인들을 동원해 서울을 장악하려 하고, 광화문을 비롯해 곳곳에 장갑차와 탱크를 동원해 막아선다. 이런 영화 속 장면이 현실로 다가왔다.
윤 대통령은 전날(3일) 오후 10시 28분께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한 뒤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하며 시민·국회 관계자 등과 몸싸움을 벌였다. 본회의장을 향하려는 국회의원 일부는 국회 출입이 막히자 담을 넘었다. 본청 안에 있던 보좌진 및 관계자들은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나무 문짝, 대형화분, 책상, 의자 등을 동원해 본청 1층과 2층 출입문을 봉쇄했다.
일부 무장 병력은 창문을 깨고 국회 본관에 들어가는 데 성공. 이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 이어 새벽 1시 14분께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이 의결된 이후 약 6시간여만인 4일 새벽 4시 27분께 국회 요구에 따라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이 모든 상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4일 한 누리꾼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영화 ‘서울의봄’을 라이브로 지켜봤다”며 “지금처럼 유튜브나 뉴스 속보도 없던 시절 광주 시민은 어떻게 총구 앞에 맞설 수 있었을까. 그 역사가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 것”이라고 남겼다. 그러면서 “잘못을 저지른 자가 처벌받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까지 이번 사태를 주시하자.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는 "군인들이 무슨 잘못이냐"면서 " 스무 살 남짓의 우리 아들들인데 역사 시간에만 듣던 '계엄군'이 되라는 상사의 명령을 받고 얼마나 황당하고 난처했을까"라고 했다.
이 외에도 “살다 보니 계엄령을 두 번이나 본다. 처음 볼 땐 10대였는데” “장갑차 앞에서 ‘인간 바리게이트’치는 시민들의 모습, 중간중간 계엄군과 시민 일부가 서로 다독이는 모습에 울컥했다” "놀라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펑펑 울었다", “계엄령 선포 무효 가결 순간 국회 본청 관계자들 환호 지르는 거 보면서 같이 소리 질렀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