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현기자
경기 남부지역 신도시 인근에 위치한 A의원은 대표원장을 비롯해 전문의 3명 모두 응급의학을 전공한 응급의학 전문의원이다. 일 년간 단 하루도 문 닫지 않고 응급환자를 진료하며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가 아닌 사업 관점에서 보면 응급환자 진료는 A의원의 주요 수익원이 아니다. A의원은 현재 응급의학 외에 아동심리발달·도수치료·문제성손발톱·비만클리닉 등을 진료 중이다. A의원에서 막대한 비급여 실손 보험금 청구가 이뤄지는 상황을 모니터링 중인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응급의학과 전혀 상관없는 이른바 비급여 실손 4대장을 모두 하는 매우 기이한 의원"이라고 말했다.
올해 5월 문을 연 A의원은 개원 직후 아동심리발달 클리닉 운영을 위해 언어·인지·놀이·미술·감각통합 등 아동심리발달지연 관련 거의 모든 분야의 치료사를 비정규직 형태로 채용했다. 이후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분야별 클리닉을 개설했다. 신도시 주민 커뮤니티 등에도 적극 홍보했다. A의원은 비급여인 언어·놀이·미술·인지·작업인지 치료로 8만원, 지능검사로 20만원, 종합발달검사 치료로 40만원 등의 가격을 책정했다.
A의원에서 하는 아동심리발달 치료는 최근 몇 년 새 실손 보험금 청구가 가장 많은 항목이다. 국내 5대 손해보험사(삼성·현대·KB·DB·메리츠)로부터 입수한 주요 치료항목별 실손 지급 보험금 현황을 보면 2020년 발달지연 실손 보험금(급여+비급여)은 434억원에서 2023년 1623억원으로 3.7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손보사 전체 실손 보험금이 7조696억원에서 9조187억원으로 1.3배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발달지연 실손 보험금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1342억원이 지급됐는데 이 중 비급여는 1245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재 수도권에는 A의원처럼 주요 진료과목이 아닌 부설클리닉 형태로 다양한 비급여 치료를 다루는 곳이 적지 않다. 경기 남부지역 5층짜리 건물에 들어선 B의원도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학이 전문의를 둔 주요 진료과목이지만 이와 관련이 없는 도수치료·문제성손발톱·비만클리닉을 운영한다.
B의원에서 운영하는 문제성손발톱 치료의 경우 네일 자격증에 간호조무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클리닉실장이 상담과 치료를 병행한다. 발톱무좀치료 명목으로 하는 비급여인 오니코레이저는 한 발당 10만원, 내성발톱치료 목적의 매치와이어 시술은 한 줄에 20만원이다. 해당 병원을 이용한 한 지역 주민은 "이곳에서 손발톱 관리를 한 이후 네일숍에 갈 필요가 없게 됐다"면서 "스케일링과 각질 제거까지 해주고 치료비도 실손 처리가 가능해 자주 이용한다"고 전했다.
이런 형태로 운영되는 병·의원 사정을 잘 아는 의료업계 한 관계자는 응급의학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비인기과의 경우 저출산과 낮은 수가 때문에 이른바 돈이 되는 비급여로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라고 했다. 병원에서 비급여 치료를 위한 인력을 직접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엔 브로커가 병원 곳곳을 다니며 영업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유행하는 발달지연의 경우 브로커가 병원과 발달지연 치료 관련 센터를 연결해준다. 병원은 센터에서 파견한 인력으로 비급여 발달치료 클리닉을 운영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 일부를 브로커에 전달하는 식이다. 브로커가 챙기는 몫은 20~30% 수준이다. 문제성손발톱 치료의 경우 사실상 네일숍이 병원에 입점하는 '숍인숍(Shop in Shop)' 형태로 봐도 무방하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의사에게 와서 '운영은 우리가 할 테니 당신들은 처방만 내려주면 된다'는 식으로 설득한다"면서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니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