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기자
네이버 손자회사인 한정판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이 조단위 투자금을 유치하며 올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이 됐다. 하지만 글로벌 사업 확장 과정에서 대규모 지분 투자에 나섰는데, 대부분 성과가 부진한 탓에 대규모 결손금이 발생하며 완전자본잠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크림은 올해 외형 확대와 수익성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기업공개(IPO)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계속된 적자와 글로벌 경기 불황 여파로 리셀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실적 반등은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크림은 최근 인도네시아 한정판 커머스 플랫폼인 'PT Karunia International Citra Kencana(킥애비뉴)'의 주식 397주를 6억4000만원에 사들였다. 취득 후 지분율은 40.3%다. 크림은 킥애비뉴를 관계기업으로 두고 2년 전부터 지분을 조금씩 매입해 왔다. 크림 측은 이번 지분 매입에 대해 "해외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통신판매중개 사업자로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크림은 2020년 개인 소유 한정판 제품과 인기 제품을 사고파는 플랫폼으로 2021년 1월 네이버의 어플리케이션(앱) 개발 자회사인 스노우에서 물적분할해 설립됐다. 지난해 말 기준 크림은 스노우가 지분 39.04%를 소유해 최대주주이며, 네이버도 4.90% 지분을 갖고있다. 크림의 설립 첫해 스노우의 지분은 90%에 달했지만, 각 기관들의 지분 투자가 이어지면서 최대주주의 지분율은 대폭 축소됐다.
크림은 올해 7월에도 전환사채를 발행해 미래에셋캐피탈로부터 14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받았다.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채로, 전환행사가는 주당 386만4922원이다. 미래에셋캐피탈은 이번 투자과정에서 크림의 기업가치를 1조2000억원으로 평가했다. 네이버가 5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크림은 올해 1조원 이상의 몸값을 자랑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선 것이다.
크림은 설립 초반부터 투자 유치와 외부 자금 조달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왔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의 한정판 커머스 플랫폼인 '소다' 지분을 49.7% 확보해 종속기업으로 편입했고, 태국의 한정판 커머스 플랫폼인 '사솜'(34.4%)과 말레이시아 운동화 리셀 플랫폼인 '쉐이크핸즈'(22.47%) 등에도 지분 투자했다.
하지만 이들 지분 투자 기업은 대부분 실적이 부진했다. 일례로 일본 소다의 경우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191억원, 순손실은 -424억원이다. 전년보다 적자규모는 100억원 정도 줄었지만, 매출액이 2022년(329억원)보다 100억원 넘게 빠졌다. 같은기간 명품중고거래 플랫폼 시크를 운영하는 팹의 경우 매출액은 32배 급증한 14억원을 기록했지만, 당기순손실은 71억원으로 전년 46억원에서 더 확대됐다.
이같은 실적 부진은 크림의 재무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기준 크림의 자본총액은 -2580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설립 이후 수익을 한 차례도 못내면서 적자가 누적된 데다, 외부 자금을 끌어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금융비율이 치솟은 탓이다. 지난해 기준 결손금은 3414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현금성 자산은 580억원, 유동부채는 전년 553억원 대비 6배나 늘어난 3135억원이다. 당기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부채가 2800억원이나 책정된 탓이다. 이는 상환전환우선주가 빚으로 분류된 것으로, 투자자들이 원금 보전을 위해 세운 안전장치다.
올해 크림은 영업흑자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크림은 병행수입 사업자를 '입점 사업자'로 등록시켜 크림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이용약관을 개정해 매출액과 이익이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다. 1%대에 그쳤던 판매 수수료를 인상한 영향도 한 몫했다. 지난해 크림의 매출액은 1222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가량 늘었고, 영업손실은 860억원에서 400억원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또 크림의 월간순방문자수(MAU)를 보면 지난해 10월에는 130만6000명에서 올해 140만~160만명 사이를 유지 중이다. 이 기간 앱 신규 설치 건수도 5만건에서 20만건으로 급증했다.
크림은 올해도 수수료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한다는 목표다. 크림은 지난 6월 판매수수료를 책정하면서 기본수수료에 등급 수수료를 합산해 지불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크림은 판매 실적에 따라 5개 등급으로 구별하고 있는데 판매실적이 많은 5등급은 기본수수료 5000원에 등급수료 3.5%를 적용하고, 가장 적은 1등급은 5000원에 4%의 등급 수수료를 적용한다. 구매자의 구매 수수료는 3.3%이다.
크림은 독점 브랜드를 입점시켜 패션종합플랫폼으로 입지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브랜드 언더마이카의 '무'라인의 경우 공식몰에서 찾아볼 수 없고 크림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또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사업자들도 앱에 입점시키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가방 브랜드로 알려진 '스탠드오일'의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국내 유통채널과 패션 플랫폼이 낙점한 신사업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한 패션플랫폼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고가의 리셀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면서 크림도 다른 쪽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결국 나중에는 패션 브랜드들을 더 입점시켜 국내 패션 플랫폼들과 비슷한 사업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크림이 네이버웹툰에 이은 차기 IPO 주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림도 지난해 김영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IPO 준비에 본격 뛰어든 모습이다. 김 CFO는 IB전문가로 KB금융지주의 푸르덴셜생명 인수, 카카오페이 IPO 등 굵직한 인수합병, IPO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다만 크림이 리셀 플랫폼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크림 검수 시스템에 대해 불편을 호소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특히 병행수입된 제품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정품이 의심된다는 소비자부터, 일부 소비자들은 병행수입 된 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제품을 구매했다가 A/S(애프터서비스)를 받지 못해 불편함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다만 크림 측은 정품으로 모두 판별 받은 것이고, 병행수입의 경우 공식 유통채널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병행수입 제품이 가품으로 의심되면 직접 근거자료를 찾아 크림에 제출해야 한다.
최근에는 어그 브랜드를 보유한 본사인 '데커스아웃도어'로부터 가품 판매를 그만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현재 크림은 공식 유통망으로 거래가 된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제품들만 검수 통과를 시키고 있다. 크림 관계자는 "가품이 많은 폴로 같은 브랜드는 직접 유통업체에서 사입해 판매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며 "가품이 많은 브랜드의 경우 직접 입점시키거나, 해당 브랜드가 크림을 통해서 거래하게끔 하는 등 많은 방법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