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미국의 빅테크 기업 수장들이 대선 전후 일명 '트럼프 랠리'로 불리는 상승호재로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자산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입각이 예정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부터 엔비디아, 오라클, 메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정책수혜 기대감이 커진 영향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규제철폐와 감세안 연장, 대중국 관세가 이행될 경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연구개발(R&D) 비용을 늘리고 중국 기업들의 견제를 따돌릴 여력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전세계 억만장자들의 연초 이후 자산증식 규모 순위에서 1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차지했다. 머스크는 연초 이후 자산이 1020억달러(약 142조8816억원) 늘어났다. 2위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843억달러), 3위는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798억달러), 4위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707억달러), 5위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487억달러) 등의 순이었다.
올초만 해도 세계 억만장자 총 자산 순위 1위에 올라있던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은 올해 자산이 429억달러 감소해 자산이 가장 크게 줄어든 억만장자가 됐다. 총 자산도 1650억달러로 머스크(3310억달러), 베이조스(2260억달러), 엘리슨(2030억달러), 주커버그(1990억달러)에 이어 전세계 5위로 내려앉았다.
미국 빅테크 기업 수장들의 자산이 급증한 것은 대선 이후 빅테크에 집중될 정책 수혜 기대감 때문이다. 전통적인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 정책을 강조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미국 기업들에 친화적인 정책을 많이 쏟아낼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규제철폐, ▲감세, ▲대중국 관세정책 등 3가지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수혜로 통한다. 특히 머스크 CEO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지목되면서 규제철폐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커지고 있다.
머스크 CEO는 정부효율부 공동수장으로 함께 지명된 비벡 라마스와미와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낸 기고문을 통해 "규제 철폐와 행정부 축소, 낭비 예산 절감이란 세 가지 중대 개혁에 나서겠다"며 "신속개선팀을 구성해 정부 효율화에 필요한 각종 상황을 파악하고 행정명령이나 지침, 유권해석 등 각 부처가 만든 규제를 백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관별로 폐지될 규제에 맞춰 공무원 규모도 줄이고 재택근무도 금지해 낭비되던 2조달러(약 2800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인 감세안이 실현될 경우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대선에서 미국 내 제조업체의 법인세율을 기존 21%에서 15%로 인하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앞서 집권 1기 때인 2017년 35%였던 법인세율을 현행 21%로 낮추기도 했다. AI 개발 등에 막대한 R&D 비용이 소모되고 있는 빅테크 입장에선 큰 호재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법인세율 추가 인하는 S&P500 기업들의 주당 수익(EPS) 증가율 전망치를 4%포인트 이상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중국 관세 정책도 중국산 저가 브랜드 공세에 고전하고 있는 미국 전기차 업체,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들에 수혜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해 60%, 또는 그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고 최혜국 대우도 박탈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멕시코 등 인근 중남미 국가를 우회해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도 고강도 관세를 신설하고, 테무와 쉬인, 알리바바와 같은 중국 저가 전자상거래 업체들에 대한 소액면세 한도 폐지를 통해 무분별한 중국산 제품 유입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리스크 역시 수혜만큼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민자 추방정책에 따른 인건비 상승 및 인플레이션 우려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금리정책 마찰 등이 본격화될 경우, 미국경제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직후 불법이민자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을 진행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최근 1기 행정부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톰 호먼을 이민정책 총괄 책임자로 지명하며 불법이민자 추방정책 준비에 착수 중이다. 2기 집권 임기동안 연간 100만명 이상의 이민자들이 추방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민자들이 한꺼번에 추방될 경우,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같이 이민자가 지역 노동력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곳들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초당적 연구 그룹인 펜 와튼 예산 모형(PWBM)은 이민자 대량 추방 정책이 시행될 경우, 향후10년간 노동력 부족과 납세자 감소 등에 따라 1조달러 이상의 손실과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연준간의 마찰도 미국의 경제정책을 크게 뒤흔들 위험성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수차례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8월 "대통령이 연준서 발언권을 가져야한다"며 "많은 사례에서 내가 연준 의장보다 더 나은 직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금리정책 개입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베네수엘라 시나리오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베네수엘라는 무책임한 정부가 부채를 지불하기 위해 통화발행에 의존했으며 이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