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민기자
이현주기자
이동우기자
20대 국회의원 시절 무죄를 확정받은 사건에 대한 변호사비나 22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후보들 간 소송전에 쓰인 변호사비를 임기 말 후원회 기부금으로 충당한 21대 국회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경제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보공개를 통해 확보한 '제21대 임기 만료 국회의원 회계보고서'에 따르면 박성중 전 의원은 4·10 총선에서 낙선한 지 한 달여가 흐른 지난 5월14~21일에 후원회 기부금 계좌에서 변호사비로 총 1억3450만원을 지출했다.
구체적으로 5월14일 2016~2017년 변호사비 명목으로 3000만원을 한 법무법인에 입금했다. 사흘 뒤인 17일에는 다른 법무법인의 광화문분사무소에 3300만원, 한 법률사무소에 1100만원을 결제했다. 같은 달 20일에는 2750만원과 1100만원을 각각 법무법인에 지급했고, 다음날에는 2200만원을 다시 한 법무법인에 입금했다.
앞서 박 의원은 2016년 1~2월 당시 새누리당 서초을 국회의원 후보 당내 경선 과정에서 자신이 여론조사 1위를 했다는 허위주장을 전화로 당원들에게 알린 혐의와 같은 해 2~3월 서초구청장 시절 우면동 삼성R&D연구소를 유치했다는 허위주장이 담긴 홍보물을 유권자에게 발송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017년 11월 여론조사 1위 허위주장 혐의에 대해서는 고의성과 전파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고, 삼성R&D연구소 유치 활동 관련 허위주장 혐의에 대해서도 박 의원이 일련의 유치 활동을 실제로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이고 박 전 의원이 20대 국회의원 임기 중 대법원판결까지 난 사안이다. 하지만 변호사비는 21대 국회의원 임기 말에 후원회 기부금으로 납부했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선거 후원금을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해당 재판 변호사비로 사용해도 된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았다. 20대에 이어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그냥 두고 있었다가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하고 난 후 정리하게 된 것"이라며 "이 외에도 경기도당 등에 특별당비로 귀속시킨 액수도 많다"고 후원금 땡처리는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일로 상대 후보를 고발하는 데 후원금으로 변호사비를 쓴 국회의원도 있었다. 부산 사하구 선관위에 제출된 최인호 전 의원의 회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18일 후원회 기부금 계좌에서 변호사 선임비 선금 330만원, 5월8일 잔금 220만원을 한 법무법인으로 지출했다.
앞서 4·10 국회의원 선거 국면에서 최 전 의원과 이성권 국민의힘 후보(22대 국회의원 당선)는 낙동강 벨트 각축지로 꼽힌 부산 사하구에서 고소·고발을 하며 난타전을 벌였다. 최 전 의원 측이 이 후보를 부정선거·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하면서 변호사 선임·법률 자문을 받았다는 게 최 전 의원 측의 설명이다. 최 전 의원은 "선관위 측으로부터 변호사비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고 후원회 기부금으로 변호사 비용을 납부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자금법에는 후원금을 국회의원의 소송비로 쓸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그런데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해 지지자들이 보내준 후원금으로 변호사비를 지출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확정받은 현역 의원의 경우 선거법과 관련해 다른 후보자 고발 등과 관련된 변호사 선임비를 후원금에서 지급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소송에서 무죄를 받아낸 것이나 다른 후보를 고발하는 것 자체를 정치 활동으로 보고 있다"며 "고소·고발장, 변호사 선임 약정서, 선임계 등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타당성을 검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원활한 의정활동을 응원하기 위해 보낸 후원금으로 소송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의도(정치권)에서 벌어진 일을 서초동(검찰·법원)으로 끌고 가는 것을 선관위가 사실상 방치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정활동과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꾼이 되라고 후원금을 보낸 건데 자기 법정 비용을 쓰는 것을 유권자들이 알면 후원금을 다시 돌려달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냐"라면서 "관련 입법이 요구되지만, 국회의원들이 입법하지 않고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꾸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