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사태, 19개월의 기록]①‘2023.4.24’ 공포의 대폭락…'누가, 왜?' 여전히 미스터리

편집자주2023년 4월 국내 자본시장을 뒤흔들었던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가 발생한 지 약 1년7개월이 흘렀다. '총책'으로 지목된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를 포함해 그간 총 58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라씨에게 징역 40년을 구형했다. 법원의 첫 판단은 내년 1월에 나온다. 아시아경제는 SG 사태 이후 지난 19개월의 수사 및 법정 기록을 토대로 핵심 쟁점 및 새롭게 드러난 진실과 오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을 짚어봤다.

2023년 4월24일 오전 9시20분께.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9개 종목 주가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락했다. 해당 종목들 모두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을 통해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이른바 'SG 사태'의 시작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수사 범위에 정작 '폭락일' 빠져

업종이 전혀 달라 딱히 연결고리가 없는 여러 상장사가 동시에 3~4일 연속 하한가를 맞은 것은 국내 주식시장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일반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75%에 달하는 평가액 손실을 봤다. 당연히 '대체 누가 왜' 이 같은 폭락을 유발했는지 그 배경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언론을 통해 라씨 일당이 수년에 걸쳐 주가조작을 벌였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하지만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정작 폭락이 발생한 '문제의 4월24일'은 수사 범위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3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을 'SG증권발(發) 주가폭락 사태'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도 라씨 일당을 기소할 때 범행 기간을 '2019년 12월13일부터 2023년 4월21일'로 적시했다. 즉 폭락 직전까지의 주가 상승기에 대해서만 시세조종 혐의를 적용하고, 폭락 당일은 뺀 것이다. 금융당국의 조사도 4월21일까지만 이뤄졌다. SG사태 초기 매매내역 등 조사를 총괄했던 금융감독원 직원 A씨는 지난 8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4월24일 폭락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겠다"며 관련 증언을 일절 거부했다. 담당 재판장도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함부로 말할 사안이 아니다"며 "조사 범위도 아니고, 저희가 검찰에 제출한 분석내용에도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검찰, '인위적 주가상승' 입증 주력…폭락은 별개

라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의 범행 기간에 주가 폭락일이 빠졌다고 해서 시세조종 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그간 재판에서 라씨 등 조직원들이 통정매매 등 수법으로 인위적으로 주가를 상승시켰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뒤늦게 주가가 폭락한 것과 이들에 대한 처벌은 별개라는 의미다. 실제 '실패한 시세조종'도 처벌된 전례가 많다. 담당 재판장도 "4월24일 주가 대폭락이 라덕연 조직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그것을 전제하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며, 처음 재판을 시작한 때처럼 '시세조종으로 상승한 부분'에 대해서만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라씨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의 실체는 폭락이 없었다면 피해도 없었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또 한 가지 남은 의문이 있다. 애초에 라씨 조직에서 투자한 종목은 검찰에서 범죄사실에 적시한 8개 종목 외에 하나가 더 있다. CJ다. 실제 지난해 4월24일 폭락 흐름에도 CJ는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수사는 물론 기소 대상에서도 CJ는 빠졌다. 그 이유에 대해 검찰이 명확히 밝힌 바는 없다. 금감원 직원 A씨는 "애초에 금융위원회에서 '공동조사 요청서'가 오면서 (조사가) 시작됐는데, 거기에 종목이 8개였다"며 "(금감원에서) 임의로 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약 19개월이 지난 현재, 다른 8개 종목은 여전히 폭락 직후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반면 CJ는 주가를 상당히 회복했다. 라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들은 CJ도 포함해 거래했는데 그 부분은 기소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의 기소가 거래 패턴의 위법성을 단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폭락 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인도 "폭락의 책임이 밝혀져야 하는데 (수사기관이) 4월24일에 대해서는 아예 눈과 귀를 닫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라진 8.6조원'…피해자들, '불법 공매도' 의심

지난해 4월24일부터 발생한 대규모 폭락으로 불과 나흘 만에 9개 종목에서 시가총액 약 8조6000억원(2023년 4월21~27일·종가 기준)이 증발했다. 이 중 라씨 조직 관련 투자자들 지분이 대략 2조원, 대주주 지분은 약 4조원으로 파악된다. 나머지는 미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불특정 다수 피해자의 몫이다. 검찰도 지난 14일 결심공판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분들은 시세조종 행위로 고점에서 샀다가 폭락을 맞은 분들"이라며 "법정에서 이야기할 기회도, 피해를 호소할 곳도 없는 분들"이라고 언급했다.

지난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김모씨(41)는 "(투자자들이) 다 거지가 됐다"며 "이 일로 대체 누가 돈을 벌었는지 그게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린 것은 물론, 추가로 100억여원의 빚을 지고 개인회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사태 피해자들은 '폭락의 날' 불법적 공매도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그러면서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SG 사태 파악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누구도 알 수 없다.

내년 1월23일 SG 사태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의 첫 선고가 예정돼 있다. 유죄든 무죄든 이는 인위적 주가 상승을 견인한 '시세조종' 혐의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결국 까닭 모를 '주가 폭락'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다. 피해자들은 '법정 밖'의 진실을 구하고 있다.

사회부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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