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돌아왔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환호성 지르는 행사

트럼프 "메리크리스마스 간판 달게 하겠다"
수년간 보수와 진보 '크리스마스 전쟁'
약속 지킨 트럼프에 보수주의자들 열광

"크리스마스를 다시 위대하게(Make Christmas Great Agai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지지자들이 크리스마스를 미리 만끽하고 있다. 최근 엑스(X·옛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할인점 '타깃(Target)'의 매장 내부 모습이 찍힌 사진을 빠르게 공유하고 있다. 사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적힌 간판이 매장 천장에 걸려 있다. "타깃이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 대신 메리 크리스마스 간판을 가졌다" "드디어 문화전쟁에서 승리했다"며 트럼프 당선으로 드러난 변화에 환호했다.

타깃의 행보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월마트와 경쟁하는 대형 할인점 타깃은 수년간 보수주의자들에 그야말로 '타깃'이 된 업체다. 2005년 타깃이 연말 세일 행사에 크리스마스 대신 홀리데이란 용어를 사용하자 미국가족협회(AFA)가 불매운동을 벌였다. 2016년엔 성소수자들을 위한 남녀화장실 혼용을 허용하자 또다시 불매운동이 일었다.

크리스마스 전쟁 밈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미국의 보수 법률단체 '리버티 카운슬'은 2021년 크리스마스를 홀리데이로 바꿔 예수의 탄생을 침묵하고 자체 검열한 나쁜 업체로 타깃을 지목했다. 타깃은 지난해 LGBTQ 인권의 달 행사에서 관련 상품을 매장 전면에 배치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매장에 난입해 상품 진열대를 부순 보수주의자들 탓에 매출 부진과 주가 하락을 겪었다. 최근까지 '더 행복한 휴일(Happier holiday)'이란 광고 문구를 내보낸 타깃이 트럼프가 당선한 뒤 '메리 크리스마스' 간판을 내걸자 화제가 된 것이다.

미국 대형할인점 '타깃' 매장에 메리 크리스마스 간판이 걸렸다는 글과 사진 [사진출처=엑스(X·옛 트위터)]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

'해피 홀리데이스'란 인사말이 확산한 건 진보 단체의 역할이 컸다. 종교적 의미가 제법 퇴색된 인사말 같지만, 다른 종교인 또는 비종교인 입장에선 '메리 크리스마스'는 주님(Christ)의 탄생을 기뻐하고(Merry) 경배한다(mass)는 기독교적 의미를 지닌다.

진보단체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혼재한 국가에서 특정 종교색이 지나친 인사말보단, 연말연시를 포괄하는 인사말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수정헌법 제1조 신앙 자유의 원칙에 근거한 것으로, 이 주장은 미국 사회에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반면 보수단체는 기독교가 근간인 미국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여겨 매우 불편해했다.

이처럼 수년간 크리스마스 시즌에 일어나는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은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이라고 불린다.

보수와 진보 갈등의 중심, '수정헌법 제1조'

양측의 이해 충돌 중심에는 미국의 권리장전인 '수정헌법 제1조'가 있다. 수정헌법 제1조에 따르면,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정교분리(政敎分離)와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된 이유는 기독교 교파인 개신교인(청교도)이 겪은 종교적 핍박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청교도들이 살던 17세기 영국의 국교회는 성공회였다. 성공회 수장인 영국의 국왕 아래 영국인은 모두 성공회 교인이어야 했다. 영국은 이처럼 한 교파가 정부의 지원을 독점하는 '독점적 국교제'였다. 타 종교인은 종교적 탄압과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독점적 국교제는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지금의 미국 땅을 밟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18세기 제1차 대각성(大覺醒) 운동을 통해 청교도 신앙(복음주의)이 '미국인'이란 일체감과 문화 형성의 근간을 이뤘고, 미국 독립혁명의 씨앗이 됐다.

미국 헌법 서명 장면. 1940년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 작품 [사진출처=미국 의사당 관리국]

독립 후 새로운 국가에서 종교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이뤄졌다. 당시 헌법 4조로 독점적 국교제는 금지됐다. 선택지는 2가지였다. 정부의 지원을 모든 개신교 교파로 확대하는 '일반적 국교제'와, 어떠한 지원도 허용하지 않는 '국교제 폐지'였다. 결국 주류와 비주류 교파 간 지원 격차 발생 등을 고려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국교 수립을 금지하는 내용의 수정헌법 제1조가 제정됐다.

다만 이는 개신교 내 특정 교파를 국교로 삼고 다른 교파를 탄압하려는 움직임을 방지하는 것이지, 개신교가 주류 종교란 사실을 부정하거나 개신교와 완전히 분리된 사회를 만들려는 취지는 아니었다. 개신교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다양한 교파를 자유롭게 믿을 권리를 보장하는 취지로 본다. 역사가들은 이후 다양한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모든 종교에 대한 자유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고 분석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트럼프 인사말에 열광하는 보수주의자들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사진출처=AP연합뉴스]

2006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140만명에게 카드를 보냈다. 카드에는 '희망과 행복이 깃드는 홀리데이가 되길 기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한 부시 대통령의 행동에 기독교 보수단체는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후임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카드에 크리스마스란 문구를 쓰지 않았고, 흔한 크리스마스 장식마저 생략했다. 미국 정치인들도 인사말로 "해피 홀리데이스"를 더 사용하는 추세다. 포용이란 이름 아래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연 트럼프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상점에 '메리 크리스마스'란 간판을 다시 달 수 있게 만들겠다"고 2015년 공화당 경선 후보 때부터 공언했다. 전통적인 기독교 복음주의 가치관의 수호자로 떠오른 트럼프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나 보수단체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정치 쟁점화했다고 일각에선 비판하지만, 앞서 미국의 역사를 고려하면 한편으론 이해할 만한 반응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vs 해피 홀리데이스, 미국인의 선택은?

미국인들은 두 인사말 가운데 무엇을 더 선호할까. 2013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장에서 다른 신앙을 가진 고객을 맞이할 경우 존중의 표시로 응답자의 49%가 '해피 홀리데이스'를 써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응답자의 43%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호했다.

4년 뒤인 2017년 메리스트 여론조사에선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미국인 절반 이상(59%)이 인사말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해피 홀리데이스(39%)보다 선호한다고 답했다. 2022년 미국 몬마우스 대학 여론조사 연구소가 실시한 설문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61%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인사말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해피 홀리데이스는 30%에 그쳤다.

정치부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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