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영인턴기자
러시아가 구글에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을 훨씬 뛰어넘는 천문학적 벌금 폭탄을 때렸다. 서방국가의 대러 제재에 불만을 품고 빅테크를 상대로 정치적 보복을 시행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벌금이 실제로 집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블룸버그·타스통신·RBC 뉴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러시아 법원은 29일 구글이 러시아 친정부 언론매체의 유튜브 채널 계정을 차단한 혐의로 진행된 재판에서 2언데실리언 루블의 벌금을 부과했다. 언데실리언(undecillion)은 36제곱, 즉 0이 36개로 간(澗)으로 불린다.
구글은 지난 2020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에 대한 제재로 차르그라드와 리아통신, 로시야24 등 친러시아 성향의 언론 매체가 운영하는 채널 계정을 유튜브에서 비공개 처리했다. 현재 기준 총 17개 매체에 달한다.
이에 러시아 언론사들이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소송은 4년간 이어졌다. 4년 간의 재판 끝에 법원은 구글이 계정을 복구할 때까지 매일 10만 루블(약 142만원)의 벌금을 징수하라고 명했고, 일주일간 이를 거부할 경우 금액을 2배씩 늘리라고까지 명했다. 여기에 벌금 총액에 상한은 없다는 조항까지 추가되며 벌금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법원의 판결에 따를 경우 지금까지 누적된 구글의 벌금 규모는 2간 루블로, 달러로 환산할 경우 200구(1구는 10의 32제곱) 달러에 달한다. 이는 세계 모든 국가의 GDP를 합한 것보다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글로벌 GDP는 약 110조 달러(약 15경1700조원) 수준이다.
다만 정치적 보복성이 짙은 벌금인 만큼 실제로 집행될 가능성은 없다. 현실적으로 구글이 벌금을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1조1700억 달러(약 1614조7000억원)이다. 또 구글은 지난 2022년 러시아 법원이 거래 계좌를 동결하자 러시아 현지법인에 대한 파산 신청을 하고 사업을 중단한 상태다.
이번 일을 두고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실질적 처벌이 아닌 상징적인 조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 대응해 최근 수년간 새로운 법률을 도입했는데, 이 중에는 해외에서 소송을 하는 서방 기업에 대한 자국 법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법률도 포함됐다. 서방 국가에서의 판결이 공정하지 않다고 가정하고, 이에 대한 보복성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블룸버그는 "일방적인 제재로 러시아와 서방 기업 간의 분쟁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구글의 상황은 법적 시스템이 고조되는 지정학적 갈등에서 전쟁터로 변해가는 모습을 반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