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
10월 24일 일본 오사카부 다이토시에 위치한 후나이전기. 오후 1시 30분쯤 사내 방송으로 "전 직원은 식당에 모여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이 자리에서 회사측 변호사는 "회사가 파산했다"고 알렸다. 이어 "모든 직원을 해고 할 수 밖에 없다. 25일 지급될 예정이던 급여도 지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회사가 어려운 것은 알았는데 파산이라니, 거기다 월급마저 못받고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니. 직원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직장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미리 탈출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놓쳤다"며 탄식했다. 60년 역사에 한때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름잡던 후나이전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61년에 설립된 후나이전기는 3월 기준 2000명이 넘는 직원을 둔 중견기업. TV 등 영상기기를 비롯해, 프린터와 에어컨 등 폭넓은 사업을 전개하면서 2000년 상장하기도 했다. 2002년에 생산을 시작한 LCD TV 사업 부문에서 북미 시장 최고 점유율을 기록한 적도 있다. 하지만 중국 업체 등과의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적이 악화했고, 2021년에는 도쿄의 출판사 계열이 인수된 뒤 상장 폐지됐다. 이 회사가 올 8월에 공표한 작년도 결산에 따르면, 최종 손익은 131억 엔(1200억원) 적자, 올해 3월 말 현재 부채 총액은 461억 엔(4160억원)에 달했다.
30일 일본 ‘IT미디어 비즈니스’는 온라인판에서 후나이전기의 파산을 조명했다. 앞서 직원들의 탄식처럼 후나이전기는 망하는 징후(반대로 직원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다수 있었다. 그 징후는 ▲회사 내부의 불길한 움직임 ▲무너지는 본업 ▲ 돈과 사람의 이탈 등이다. 일본 매체들은 지난 여름부터 자회사 부실을 근거로 후나이전기 위기설을 보도했지만 대부분 직원들은 "우리와는 무관하다"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파산의 원인이 본업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주력인 LCD TV 제조는 과거와 비교하면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2024년 3월기 연결 매출액은 약 851억 엔 (7700억원, 전기 대비 4.1% 증가)으로 선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현금 및 예금잔액이 222억엔(2000억원)이나 있었다. 하지만 1년 사이에 4000억원이 넘는 부채가 발생한 것이다.
63년 역사의 회사가 한순간에 망하게 된 것은 2021년 새 주인을 맞은 것과 이듬해인 2022년 제모 전문 미용점(뮤제플래티넘)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출판사에 인수된 이후에만 300엑엔(27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9월말 현재 자본은 잠식됐고 117억엔(1000억원)의 채무초과 상태다. 채무초과란 부채의 총액이 자산의 총액을 초과하는 것이다. 뮤제플래티넘도 공격적인 영업을 펼쳤지만 자금난에 빠다. 지난 3월 뮤제 플래티넘을 매각했지만 여기서 떠앉은 부채까지 해결하지는 못한 것이다. 일본 매체들은 "후나이전기의 파산 원인은 본업의 위기뿐 아니라 외부로의 자산 유출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매체는 "후나이전기의 ‘비극’에서 배워야할 점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위험을 파악하는 포인트는 ‘본업’만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특히 "후나이전기와 같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사양화할 경우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으려고 인수합병(M&A)이나 업무제휴로 이업종 진출 등을 도전한다"면서 "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때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선의의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회사를 키운다고 하면서 우량 자산을 손에 넣거나 돈을 돌려막기해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직장인들은 자신의 업무 이외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겠지만 ‘도망치지 못한 사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M&A와 같은 회사 안팎의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