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준기자
2003년 여름, 계절이 무색하게 동트기 전 백두산은 겨울처럼 싸늘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열네 살 소녀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열심히 산에 올랐다. 정상에 다다랐을 즈음 입김 너머로 '기이한 차림'의 외국인이 보였다. 커다란 덩치에 덥수룩한 수염, 찢어진 청바지까지.
'미국인은 사람도 잡아먹는다'고 하던데, 초라한 행색을 보니 혹시 거지인 걸까.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딸의 물음에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저건 아마도 멋으로 입은 게 아닐까."
낡고 해진 게 멋이라니. 소녀의 세계관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바깥세상에 동경을 품은 이 아이는 패션 브랜드 아이스토리 대표이자, 다결(강지현·35)이란 이름의 예술 작가가 됐다.
서울 중구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지현씨는 백두산에서의 그날을 떠올리며 "아직도 충격적인 기억"이라고 말했다. "옷이 낡으면 기워서라도 입지, 찢어진 바지는 정말 거지들만 입는 것이었다"며 "미국인은 사람도 잡아먹는다고 했는데, 그 외국인의 미소는 굉장히 맑았다"고 했다.
지현씨가 살던 곳은 함경북도 청진. 아버지는 노동당 간부였고, 어머니는 장사를 했다. 태어날 때부터 권력과 유복한 환경이 주어진 삶이었다. 어딜 가나 귀염을 받았고, 사람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를 대접했다. 그렇다고 '닫힌' 세상에서의 갈증까지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막연하게 '옷'과 '멋'에 꽂힌 소녀는 디자이너라는 꿈을 키웠다. 북한에도 '재단사'라는 직업이 있었지만,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은 자꾸만 커졌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중국 유학을 준비했고, 아버지는 딸을 위해 고이기(뇌물)까지 했다. 하지만 당 면접에서 받은 결과는 탈락.
좌절감에 빠져 있던 그에게 친한 친구가 '중국행'을 제안했다. 지현씨는 "중국에서 들여온 남한 드라마를 팔던 유명한 오빠였다"며 "친척 집에 놀러 가자길래 무심코 따라나섰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부모님 몰래 떠난 길이었지만, 탄탄대로였다. 오빠가 소개한 친척은 '중국인 선교사'였고, 그는 지현씨가 하얼빈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도와줬다.
바라던 공부도 하고 남한 드라마도 열심히 봤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갈 기회까지 주어졌다. 선교사의 소개로 만난 목사가 그를 도왔다. 지현씨는 "당시에는 한국에 오면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못 했다"며 "탈북을 하려다 모진 일을 겪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그렇게 덜컥 한국에 도착했다.
행운이 계속된 건 아니었다. 고난은 밀린 숙제처럼 한꺼번에 찾아왔다. 가진 것이 많은 부모님 곁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소녀가 한순간에 혼자만 있는 세상에 떨어진 것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착한 한국 사회는 너무 가혹했다. 쓰는 말이 같아 의사소통은 걱정하지 않았는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더 많았다. 지현씨는 "처음에는 대화도 쉽지 않았다"며 "줄임말부터 콩글리시, 외래어, 은어들이 너무 많아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홀로 싸워야 했다. 호의적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북에서는 부모님의 후광이 있으니 어딜 가나 대접받았지만, 여기선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내야 했다"며 "겁이 나서 도움의 손길도 모두 내쳤다"고 털어놨다.
유혹도 많았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며 다가오는 그림자도 있었다. '남친'에게 값비싼 선물을 받았다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쉽게 얻으면 분명히 대가를 치른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버텼다"며 "편하게 살 방법을 찾기보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악착같이 노력한 끝에 2016년 한양대에서 의류학 전공으로 졸업장을 따냈다. 2021년에는 작품을 담아낸 옷으로 브랜드도 창업했다. 백두산의 소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부턴 작품 활동과 사업을 병행하면서 고려대 대학원에서 창업학도 공부 중이다.
지현씨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낸다. 그의 전시회에서 가장 시선을 끈 건 2021년 세상에 나온 '꽃 군복'이라는 오브제다. 촘촘한 철창 속 가둬진 군복 위에 다양한 색감의 꽃들이 활짝 피어난 모습이다. 국경경비대 장교들이 입는 '사제' 군복까지 공수했다.
그는 "북한에선 어린 나이부터 군대에 가서 10년 정도 복무해야 한다"며 "말 그대로 청춘을 다 바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었다면 술도 마음껏 마시고 소개팅도 하면서 한창 즐거울 나이인데, 그런 꽃다운 시기에 감옥처럼 갇혀 지내야 한다는 게 마음 아팠다"고 설명했다.
지현씨는 평범하지 않은 출신과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그의 작품에는 '보라색'이 자주 등장한다. 남(南)과 북(北), 혹은 남(男)과 여(女)로 대비되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은 색이다. 더는 서로를 나누지 않고 조화를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작가 다결. 많을 다(多)에 물결의 '결'을 따온 그의 이름에는 소박한 꿈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의 삶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마음을 실어 나르고 싶다는 바람이다.
<i>"당장 주변을 돕지도 못하면서 통일을 위한 사명감이나 거창한 정치적 목표를 말하고 싶진 않아요.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서 소박하고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을 키운다면, 나 말고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