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또 다른 승자' 국민연금…평가액 9000억 불어난 '분쟁의 마법'

42일만에 평가액 최대 9117억원 증가
위탁투자 물량은 일부 팔았을 가능성 높아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 보트' 역할도 주목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승자'로 떠오르고 있다. 고려아연이 상한가로 100만원을 넘는 '황제주'에 등극하면서 보유 지분 평가액이 한 달여 만에 최대 9000억원가량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 정도 단기간에 대형 상장사의 지분가치가 곱절로 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전일 종가(113만8000원) 기준 국민연금의 보유량 156만6561주(최근 공시 기준)의 평가액은 1조7827억원이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공개매수를 공시하기 전날(9월12일)인 55만6000원 기준 평가액은 8710억원이었다. 불과 42일 만에 9117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에서의 순위도 수직으로 상승했다. 평가액 기준 40위권 안팎에서 14위로 올랐다. 국민연금의 지분 5% 이상 대량보유 종목은 270개이며, 이 중 평가액 1조원이 넘는 것은 23개이다.

일부 매도했을 듯…1%만 팔아도 차익 1000억원 이상

평가액 최대 9000억 증가는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이후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을 하나도 팔지 않았다는 가정에서 나온 계산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물량 일부를 차익 실현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식 운용에서 직접 투자와 위탁 투자가 반반 정도로 비슷하다"며 "직접 투자는 건드리지 않았더라도 위탁 투자 물량은 이번 분쟁 기간에 팔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위탁운용사가 보유한 물량의 경우 국민연금이 관여하지 않고 전적으로 맡긴다. 시세가 급격히 올라가거나 떨어질 경우 매도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다.

최근 공시 기준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7.83%이다. 절반 정도의 비중인 위탁투자만 보면 약 4%이다. 현 시세로 보유 물량을 일부 처분할 경우 지분 1%(20만9085주)당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차익이 발생한다. 과거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매입 시기를 고려했을 때 매입 평균단가는 50만원 이하로 추정되는데, 시세가 2배를 웃돌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적어도 9월에는 고려아연 주식을 장내 매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보유목적은 '단순투자'이다. 공시의무에 따르면 단순투자의 경우 지분이 변동될 경우 변동분기의 익월 10일 이내에 보고해야 한다. 9월에 매도했다면 10월1일과 10일 사이에 공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기간 국민연금이 공시한 것은 없었다. 다만 10월 중 물량을 일부 팔았다면 4분기(10~12월)의 익월인 내년 1월1일과 10일 사이에 공시한다. 국민연금의 매도 여부는 당분간 공시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캐스팅 보트'로 떠오르는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아직 진행 중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 보트'로도 주목받고 있다. 물량을 일부 팔았더라도 경영권 향방을 가를 수 있을 수준의 지분(4%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 간의 지분율 격차는 2%포인트대에 불과하며 양측 모두 절대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한 언론 매체 의뢰로 리얼미터가 발표한 ‘고려아연 경영권 사태 관련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3%가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고려아연 안건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의결권 행사는 기금운용본부에서 결정하지만, 자체적인 판단이 어렵거나 수책위 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수책위가 의결권을 정한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지난 5년간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발의된 안건 중 90% 이상을 찬성했다는 이유로 현재 경영진 손을 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주총회 반대율은 연간 기준 모든 기업을 통틀어 10%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에 과거 의결권 행사에 의미 부여하는 것은 과장된 해석으로 보인다.

증권자본시장부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