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기자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의사를 밝힌 지난 22일, 저녁 자리에서 만난 의료계 한 원로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당장 반발하고, 민주당도 즉각 불참하겠다고 하지 않느냐. 사실상 어그러진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두 단체가) 어떤 심정으로 협의체에 참여하겠다 했는지는 알겠지만, 정부의 입장 변화 없인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의학계 일부 단체의 참여 발표로 급물살을 타는 듯했던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협의체 발족 이전 의대생 휴학 승인'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직접 들은 이들 단체의 생각 또한 '어떻게든 잘 되겠지'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은 "안된다고 하면 다 안 되는 것이고, 된다고 생각하면 다 되는 것이다"라며 "(휴학 승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종태 KAMC 이사장은 "의대생 휴학 승인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이라고 당연함을 주장했다. 정부의 기존 방침을 꺾어야 하는 의료계의 요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간과했던 듯하다.
여야의정 협의체를 추진해온 여당도 다르지 않았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정부를 설득할 계획이 있는지 묻자 "서울대의 경우는 사전협의 없이 독자적 결정을 해서 정부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고, 정부도 휴학 승인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긍정적인 전망만 내놨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와 '당연함'이 무너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들이 협의체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교육부는 "동맹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가 아니다. 휴학 승인 방침에 대한 입장 번복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협의체 구성은 다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의료계 선배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더 큰 반발을 우려한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등 다른 의사단체들도 협의체 참여를 유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표면적으론 '전공의를 대표할 만한 단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협의체 불참 의사를 밝혔다.
대한의학회·KAMC도 처음부터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의 반발을 예상했다. 단체의 입장이 어려워질 수 있지만, 합리적 논의를 진행해 나간다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합류해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두 단체는 얻은 것 하나 없이 '정치권 들러리냐'와 같은 비난만 받고 있다. 지금의 의정 사태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최소한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아 중심을 잡고, 정치권과 서로 주고받는 물밑 협상을 해야 한다.